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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범죄가 늘어나는 까닭 - 함인희
	2007-03-14
소년 범죄가 늘어나는 까닭 2년여 전 영국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12세 여자 어린이가 13세 남자 친구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아가 낙태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12세 어린이의 임신 사실도 당혹스러웠는데,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던 건 13세 남자 어린이가 여자 친구의 부모가 딸의 낙태에 동의한다는 문건을 산부인과 의사에게 제출하면서 여자 어린이 부모의 자필 서명을 위조했던 사실이었다. 이후 영국에선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던 틴 에이지의 시민권을 둘러싸고 열띤 공방이 시작됐다. 최근 촉법(觸法)소년 대상 연령을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하향 조정하겠다는 법무부 발표는 영국 사례가 더 이상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경고해주고 있다. 촉법 연령을 낮추기로 한 이유인즉, 14세 미만 소년범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이고 그 내용도 점차 흉포화하기 때문이라 하니 마음이 더욱 황폐해온다. 실제로 전체 소년범 중 12∼13세의 촉법소년 비중이 2001년의 15.4%에서 2005년에는 24.8%로 급증했고, 특히 재판에 회부되는 촉법소년 사건의 증가는 12∼13세 소년들이 살인·강도 등 중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소년범죄의 연령이 낮아지고 난폭화하는 원인으론 일단 신체적 성숙과 사회적 인정 사이의 간극 확대를 들 수 있다. 변성기 및 초경 등 2차 성징의 발현 시기는 눈에 띄게 빨라진 대신 사회적 어른 대접을 받는 시기는 점차 지연되면서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연장됨에 따라 분출구를 찾아 헤매는 에너지가 극단적 범죄를 통해 폭발하는 경우로 빈번해지고 있는 셈이다. 사회화의 주체(agent)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가족 기능의 실종 또한 최근의 소년범죄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네 가족은 자녀의 사회화 기능을 거의 포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학입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사교육비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모들 관심은 자녀의 학업 성취에만 촉각을 곤두세울 뿐, 어떤 성품을 키워줄 것인지, 어떤 가치관을 전수할 것인지,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 등은 사치스런 고민으로 치부하곤 한다. 어차피 자녀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밥 먹는 기회가 한 달 평균 1회에도 못 미친다 하니 식구들 사이의 ‘밥상머리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외침은 공허한 울림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가족이 사회화 기능을 포기한 자리에 새로운 사회화의 강자로 부상한 세력이 있으니 이는 영화, 애니메이션, TV, 음반 등의 대중매체이다. 최근에는 게임, 포르노, 인터넷 등이 청소년 사회화의 주체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의 다수는 매우 폭력적이고 극히 파괴적이며 정도 이상으로 자극적이다. 마지막으로, 소년범죄는 가족의 결손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바 최근 이혼율 증가로 인한 한 부모 가족의 증가가 소년범죄에 미치는 영향 또한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단 결손가족이 소년범죄를 야기하는 주범이라고 속단하기보다는 한 부모 가족의 빈곤화가 빈곤의 세습화를 가져오면서 자녀 세대의 좌절 및 자포자기를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반사회적 행동으로 분출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제 10대 초반 사춘기 자녀의 혼란과 분노, 욕구와 좌절, 희망과 절망 등의 정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빈곤의 악순환 극복과 더불어 소년복지를 위한 토대를 튼튼히 한다면 소년범죄로 인해 온 국민이 가슴 쓸어내리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바른사회 정책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7. 3. 1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