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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대학, 왜 위기인가? - 조동근
	2002-10-22
한국의 대학, 왜 위기인가? 교육경쟁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교육경쟁력 개념은 교육을 서비스 내지 산업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교육을 ‘도야’ 내지 ‘자질 함양’으로 보는 전통적인 교육관과 충돌한다. 우리사회는 교육, 특히 대학교육에 경제원리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교육은 그동안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교육공급자의 배타적 전유물(聖域)로 여겨졌고, 교육내용은 현실과 동떨어진 보편적·일반적 지식의 전수로 짜여졌으며 졸업 후 사회진출과 경력개발은 순전히 학생의 몫으로 간주되었다. 기업의 주인을 ‘주주’로 보느냐 아니면 ‘이해관계자’로 보느냐 하는 경제논쟁이 있었다. IMF외환위기 이후 대체로 전자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기업 대신 ‘대학’을 대입하면 ‘이해자 중심주의’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왜냐하면 더 이상 대학은 상아탑으로서의 ‘외딴 섬’일 수 없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대학이 졸업생의 최종소비자(end user)로서의 기업(이해관계자)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관심을 보였을 뿐 아직도 이를 뒷받침할 행동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 2001년 신입사원 교육을 위한 지출이 2조8천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불량품이 반품되듯 상당수의 졸업생은 리콜(recall)되어야 할 형편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의 대학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교육을 산업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산업의 경쟁력은 교육의 내용과 교육서비스의 질이 최종소비자인 기업의 니즈(needs)와 사회의 요구를 얼마만큼 충족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졸업생의 사회진출과 경력개발을 위해 얼마나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갖추었나에도 의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대학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최근 대학의 위기론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교육의 수급(需給) 변화이다. 2003년에는 대학지망생이 입학정원을 밑도는 초유의 역전 현상이 전망된다. 학생이 부족해 대학이 위기를 맞는다면, 학생이 부족하지 않았을 때는 대학교육에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학생부족을 위기로 여긴다면, 이는 그동안 우리 대학이 교육초과 수요에 안주(安住)해 왔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학의 대응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신입생 유치를 위해 총장이 ‘동분서주’한다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일부대학은 스포츠 스타와 탈랜트 재학생을 내세운 ‘스타 마케팅’을 무슨 대단한 차별적 신입생유치 전략인양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대학에 오면 미래가 보인다”식의 홍보문구에 무슨 정보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는 결코 수급역전 현상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고작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의 대학은 글로벌 의식이 약하다. 유학 떠나는 것을 탓 만했지 제 3세계 유학생 유치를 통해 수요부족을 메꾸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유학생을 유치해 교육시키면 그들은 후일 친한(親韓) 내지 지한(知韓) 인사가 되어 우리나라의 우호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대학교육이 위기상황에 처한 데에는 정부의 지나친 간섭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장 현장지식에 밝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경제원리이다. 누가 대학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는가, 즉 누가 대학교육에 필요한 기초소양을 갖추었나는 대학이 제일 잘 안다. 최근 고3 수험생은 “한가지만 잘해도 대학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교육부가 그렇게 부추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아인쉬타인의 사례가 거론되고 있다. 아인쉬타인의 재능을 인정하고 입학을 허용한 것은 ‘대학의 자율적 판단’이지 독일 교육청의 방침에 부응해 그런 것은 아니다. “한가지만 잘 해도 된다”는 극소수의 천재 아니면 직업(기능)교육에나 맞는 이야기다. 지금은 학제간 지식을 갖춘 자가 승자가 되는 융합(fusion)의 시대이다. 교육부의 사려 깊지 못한 부추김은 학생의 진로선택을 오도할 위험이 높다. 또한 대학이 자신의 신입생을 자율적 기준에 따라 선발하지 못한다면, 대학 교육은 이미 ‘절반의 실패’를 안고 가는 것이다. 박사학위 소지 고급인력의 75%가 대학에 있다고 한다. 대학의 연구성과물이 압도적인 고급인력 비중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대학은 교육과 연구 모두에서 실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학과 기업간 고급인력과 자금분포의 역상관(逆相關)은 산학협동의 기초조건을 총족시키고 있다. 그리고 산학협동은 대학과 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win-win) 전략적 제휴이다. 주지하다시피 실리콘 밸리는 대학과 기업의 네크워크가 자생적으로 빚은 결과이다. 기업은 기초연구를 대학에 외주(out-sourcing)하고 대학은 교육내용의 현실적합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의 현장지식을 교과과정에 반영해야 한다. 대학과 기업의 접점(接點)은 다양할수록 좋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한마디로 대학이 부존자원도 활용하지 못하는, 비즈니스 마인드(business mind)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총장이 산학협동을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릴수록 좋다. 우리 대학은 그동안 교육공급 독점체제에 안주하면서 오직 신입생 규모로 표시된 교세(校勢) 확장에만 몰두했다. 그만큼 호시절이었기에 교육이 서비스이며 또 산업임을 인식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요구와 동떨어진 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고, 대학의 부존 연구자원을 십분 활용하고 부족한 것을 외부로부터 보충 받는 ‘경영마인드’도, 그리고 글로벌 마인도도 없었다. 여기에 교육부의 지나친 간섭은 대학의 자율역량을 고사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것이 우리 대학의 위기의 현주소이다. 우리 대학은 교육경쟁력에 눈을 떠야 한다. 대학이 변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는 분명 없다. 암울한 전망이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조동근(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센터 소장) 출처 - FKI e-club 2002.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