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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대통령이 결단할 때 - 김석준
	2002-04-23
이젠 대통령이 결단할 때 지금 김대중 대통령(DJ)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온 나라가 대통령 세 아들 얘기로 시끄럽고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요구가 빗발치는데도 대통령의 책임있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홍 트리오’ 의혹이 국내 부패문제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국제적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더 이상 대통령이 주저할 때가 아니다. 특히 3남 홍걸씨를 둘러싼 비리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대통령의 도덕성 위기만 아니라 정권과 국가의 위기로까지 확산될 소지를 보여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평과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신범씨에게 11만달러 지불, 97만5000달러짜리 호화주택 구입, 은행융자 과정에서의 미국 시민 사칭 및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움직임, 청와대 경찰 등 관련자들의 사건 무마 대책회의 직후 최성규 총경의 몇 나라를 거친 미국 도피 등은 국민들의 의혹을 증폭시키는 일이다. 이번 일로 한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김 대통령과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지난 4년간 어렵게 쌓은 업적들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있다. 모처럼 기대를 모았던 민주당의 정치개혁 실험도 연이은 대통령 아들 부패 스캔들로 인해 그 평가가 상쇄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과 그 가족이 잘못되면 얼마나 나라에 누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국가 기관들이 사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되고 소수의 ‘형님·아우’들이 전 국민을 우롱하는 일들이 가져오는 추한 종말을 보는 느낌이다. 이것을 푸는 길은 다음의 세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째, 김 대통령은 의혹을 푸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재임 중 DJ와 야당,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차남 현철씨를 구속해 부패척결의 의지를 보임으로써 현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은 점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부패척결에 관한 한 ‘YS보다 못한 DJ’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최 총경이 미국 체류 중인 홍걸씨와 입을 맞추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는 의혹이나 미국이 공항에서 최 총경을 3시간 조사한 뒤 빼돌린 것을 FK15 구입에 대한 미 정부의 시혜라는 의혹은 단순 증거인멸만 아니라 전통 우방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청와대 비서의 사표를 수리하고 최 총경을 파면하는 등의 미봉책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 결단을 못한다면 검찰과 시민단체가 도와야 한다. 둘째, 이명재 총장이 이끄는 검찰은 그동안 실추된 검찰의 권위와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홍 트리오’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이미 최규선씨가 홍걸씨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만큼 대통령의 결단과 무관하게 검찰은 신속하게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의 부담을 더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사정기구의 중추로서 검찰이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겠다. 특검이 필요하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는 것만이 검찰과 대통령, 국가가 함께 사는 길이다. 셋째, 이번 의혹사건 규명에 시민단체들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동안 김대중 정부에 대해 미온적인 비판만 해온 점을 반성하며 시민회의, 경실련,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들과 관련 인사들이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고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나선 점은 평가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당사자인 세 아들이 검찰수사를 자청해 고령인 아버지의 인간적인 부담을 덜어주길 바란다. 대통령과 관련자들이 ‘성역 없는 수사로’ 나라를 구하는 큰 결단을 내리길 촉구한다.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02. 4.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