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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합의 파기된다면 - 제성호
	2002-10-22
제네바합의 파기된다면 20일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은 핵무기 개발계획 동결을 규정한 1994년의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이 파기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동맹국들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문제에 대해 최선의 대응책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혀 국내외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은 이미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토록 하기 위한 다단계의 대북 압박작전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이 현재와 미래의 핵동결을 약속한 제네바협정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므로 더 이상 이 협정의 존재가 무의미해졌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은 제네바협정의 파기입장을 표명하는 한편, 그동안 삐걱거리던 한-미-일 공조체제를 복원하여 후속대책(경수로 2기 제공 및 중유 공급 중단, 대북 압박외교 강화 등)을 강구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미국의 입장과 논리(핵개발=제네바협정 정면 위반)에는 약간의 허점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래 제네바협정은 영변에 소재한 5MWe 흑연감속 원자로에서의 플루토늄 추출 및 군사적 전용을 통제함으로써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동시에 과거의 핵활동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 밝혀진 우라늄 고농축 방식의 핵개발문제는 당초부터 제네바협정의 규율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아마도 북한은 이러한 입장에서 기존의 핵모호성 유지 전략을 수정하여 우라늄 고농축 방식의 핵개발 사실을 시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북한이 새로운 핵개발 사실을 드러내 놓고 미-북간의 협상의제로 삼아 김정일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동시에 그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과 외교적 고립을 타개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려는 계산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제네바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경우, 북한은 물론 햇볕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한국도 강력히 반발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반도 비핵화를 원하는 중국도 미국의 강경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할지는 미지수다. 일본은 이달 말에 열릴 예정인 북-일 수교협상에서 일단 북한 핵문제를 최우선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나 향후한반도상황을예의주시하면서탄력적으로대처해나갈것으로보인다. 본질상 북한 핵문제는 3중구조를 갖고 있다. 북한에게는 생존전략의 문제이고, 남한에게는 절박한 안보문제이며, 미국에게는 핵비확산이라는 세계전략의 문제인 것이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무조건 흥분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한반도 안보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는 극단적인 처방부터 쓰려는 자세는 위험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대북 지원을 수단으로 하는 햇볕정책의 효용성과 타당성은 근본적인 도전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결코 북한은 불량국가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결국 그들이 처한 총체적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데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타당하다. 첫째, 정부는 북한이 핵개발 사실을 시인한 정확한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둘째, 남북 당국간 대화채널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다각도로 설득하는 한편 군사적 긴장완화와 비정치분야의 교류를 균형있게 추진해야 한다. 셋째,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기조하에 한-미-일간의 긴밀한 공조를 토대로 강온양면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북한의 입장 번복이 있기 전에는 경수로 2기 지원 일정을 늦추는 한편 남북경협의 속도조절 등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정치-외교적 파장이 엄청나게 클 제네바협정의 즉각적이고 일방적인 파기 결정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諸成鎬 (중앙대 국제법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세계일보 2002. 10.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