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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들에게 자아비판하라는 말인가 - 강경근
	2007-02-01
판사들에게 자아비판하라는 말인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임기를 1년 남짓 앞두었던 역대 단임의 어느 대통령보다 낮을 정도로 국민들이 냉담한 것은 이 정권이 과연 대한민국을 섬기는 정부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국민들에게 한(恨)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민의 군대를 ‘썩고’ 나오는 곳이라 한 일은, 술 마시면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를 무용담처럼 자랑하던 많은 한국의 남성들에게는 다음 정권이 들어섰다 해도 잊지 못할 한스러운 발언이 될 것이다. ‘한’이라는 말은 원망스럽다는 뜻이다. 국민들의 마음에 그런 울화를 차근차근 심어 놓고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이 정권은 정치의 본령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국민과 나라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있다는 점을 잊고, 한풀이식의 ‘과거’와 ‘민족’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에 목적을 둔다면서 2005년에 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은 이 정부의 성격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 법에 의하여 예의 그 한의 경험을 또다시 우리들에게 주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가 특정 시기인 1970년대 긴급조치 판결의 내용과 담당 판사를 공개한 것이다. 원론적으로 판결문의 내용 및 이에 관여한 판사의 실명(實名) 공개는 재판의 공개 및 국민의 알 권리라는 헌법원칙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일이다. ‘국민을 섬기는 법원’의 모습에도 합치한다. 오히려 대법원이 솔선하여 행하였어야 할 일이다. 즉 이런 일은 법원이 재판권의 올바른 행사를 위하여 세운 일반적인 기준으로 이루어져야지, 사법부와는 전혀 무관하게 민족과 과거라는 이름 아래 제3의 기관인 위원회가 행하는 것은 권력분립주의에 반하는 일이며 법치의 실현 주체인 사법부 및 법관의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법관이 독립하여 심판함에 있어서 따라야 하는 헌법과 법률과 양심은 우리와 같은 성문헌법 국가에서는 재판을 하는 ‘당시의’ 그것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사위라는 기구가 주체가 되어 지금의 시대정신을 담은 과거사법에 의거하여 당시 법관의 실명을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공개하는 이런 일이 전례가 된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을 충실하게 반영한 법에 의거하여 재판을 행하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및 일반 법관들은 시대 지표가 달라지는 정권에 이르러서는 다시 문화혁명식의 자아비판대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재판의 독립을 해치며 소급적인 처벌이나 창피를 주는 것을 금하는 법치주의 원칙에도 반하여 결국 사법부를 정권의 법무참모로 만드는 일이 된다. 또 그런 판결을 내리게끔 한 기소를 행한 검사의 실명 공개는 안 하거나 못한다면 이는 균형성도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사법에서도 ‘누구든지 진실규명범위 대상기간 중 행정기관·군대·사법부·조직·단체 등의 특정한 직위에 재직한 사실만으로 그 재직자가 동 조항과 관련되는 가해행위를 한 것으로 신문·잡지·방송(인터넷 신문 및 방송을 포함한다) 그 밖의 출판물에 의하여 공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제31조 ‘조사대상자의 보호’). 물론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했지만, 이런 식의 법관 실명 공개는 과거사법이 말하는 ‘과거와의 화해’도 아니고 법의 가치도 될 수 없다. 능지처참의 한풀이식 여론재판이 될 가능성이 클 뿐이다. 그럴수록, 헌법은 거리로 내몰리고 대한민국을 방기하는 국가적 감성이 일상화될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이지 화해나 단죄의 대상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7. 2. 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