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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통치학' 정립을 고민해야 할 때 - 박효종
	2006-12-26
'피통치학' 정립을 고민해야 할 때 엊그제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연설에서 울분과 회한을 남김없이 토로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서러움에 북받친 대통령의 모습이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반대, 인사청문회에서의 질문, 고건 총리 문제 등 모든 것이 한스러웠다. 그동안 각종 공개 석상에서 울분과 격정을 쉴새없이 토해내던 대통령의 모습이 낯선 것은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그 정도가 지나쳐 국민 모두가 놀라고 있는 것 같다. 상대가 누구든, 이슈가 무엇이든 대통령은 언제나 서러웠다. 하도 서러움과 격정의 토로가 잦으니 ‘설득과 소통의 대통령학’보다 ‘울분과 회한의 대통령학’을 설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누구나 자신의 뜻이 좌절되고 도전을 받으면 상심하게 마련이지만, 유독 노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일이 반대에 부닥칠 때마다 억울함을 주체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권력과 직분을 ‘십자가’보다 ‘영광’으로 치부해온 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대통령이 되면 그동안 사무쳤던 응어리와 한이 ‘봄볕에 눈녹듯이’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오른 노 대통령의 경우는 달랐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보다 그 ‘이후’에 오히려 더 박해를 받고 있다는 강박관념이 강해진 것 같다. “언제 한번이라도 대통령이라고 대접해 본 적이 있느냐”며 절규했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노정권의 ‘아마추어 정치’와 ‘서신정치’ ‘코드인사’에 신랄한 비판이 쇄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국민과 언론, 야당의 충고나 비판을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권력자’가 감내해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이해하기보다는 ‘자연인 노무현’에 대한 인격 모욕으로 간주해서 분노를 느끼고 괴로워하면서 더욱 폐쇄적이 됐다. 그를 보좌해온 386 참모들 역시 대통령의 진정성을 몰라준다며 ‘한(恨)의 대통령학’ 정립에 일조해 왔다. 노정권 특유의 ‘한의 통치학’에는 언론과 국민의 책임도 없지 않다. 언론과 국민은 노정권 출범시 여느 정부의 경우와 같이 “비판없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며 ‘선출된 권력’에 대해서 칭찬과 격려보다 비판과 개선을 주문해 왔다. 노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처음에는 ‘반통령’에 불과하다며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안겠다고 공언했지만, 너무 쉽게 국민의 절반과 헤어졌다. 그들의 걱정과 충고를 대통령 흔들기의 음모로 치부한 것이다. 만일 노 대통령이 모든 국민의 대통령, 즉 ‘온통령’이 되려는 노력을 필사적으로 했더라면, 우리 사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평온한 사회가 됐을 것이다. 심지어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로마의 검투사처럼 스스로 싸움에 뛰어든 결과, 사회는 “투쟁이 모든 것의 아버지”가 되는 살벌한 상황으로 변모했다. 운명은 노 대통령에게도, 국민에게도 가혹했다. 화합보다 투쟁의 길을 선택한 그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외롭고 슬픈 대통령’이 됐고, 또 그의 슬픔과 외로움은 끊임없이 국민을 놀라게 하며, 불안과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의 집권기간은 국민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데 초점을 맞춘 ‘대통령학’보다, 통치자의 심기를 어떻게 하면 불편하지 않게 하느냐 하는 데 주안점을 둔 ‘피통치학’의 본격적인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으로 기록될 것 같다. ‘제왕학’보다 ‘백성학’의 정립이 필요했던 시기라고나 할까.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호소하고 설득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가게 만드는 방법보다, 서러워하는 대통령을 국민이 달래고 격려하면서 국태민안에 전념케 유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맺힌 대통령의 이번 연설이 갖는 중요한 함의(含意)가 아닐까.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6. 12. 2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