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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코드'예규와 사법권 독립 - 강경근
	2006-12-21
대법원 '코드'예규와 사법권 독립 1960, 70년대의 개발연대는 행정이 정치와 사법 그리고 국회를 지배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증산·수출·건설이라는 슬로건이 한 시대를 지배한 그 시기, ‘먹고사는 문제’는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 그 견인차가 행정이었고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이른바 ‘통달(通達)’ 행정이었다. 통달이란 지금 우리의 행정 실무나 법에서는 ‘통첩’ 또는 간혹 ‘예규’라고 하는 행정의 법 해석 내지 의사로서, 당시 그 말은 권력의 다른 두 축인 입법과 사법을 무시한 행정의 독주를 상징하는 기호였다. 대통령의 행위는 곧잘 입법·행정·사법을 초월한 법 위의 권력인 통치권력 내지 통치행위로 합리화되곤 했으며, 그때마다 사법은 대통령의 ‘법무참모’라는 지적을 받곤 했었다. 세월은 흘러도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대법원재판예규 제1084호로 시행된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가 각급 법원에 대해 처리하는 사건 가운데 중요한 사건의 처리 현황을 최고 법원인 대법원에 딸린 법원행정처에 보고하고, 각급 법원의 재판장에 대해 재판사무 시스템에 중요사건을 필요시 등록하도록 한 것이다. 예컨대,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저촉·모순되는 판단을 한 사건이라든지, 똑같은 쟁점에 관한 기존의 하급심 판결례와 다른 취지의 판단을 한 사건 등이 그것이다. 특히 긴급한 보고가 필요한 사건의 경우에는 기관장에게도 보고토록 하고 있다. 이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의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 제도인 배심이나 참심제를 가지지 않고, 전형적인 직업 법관의 제도를 채택하여 사다리타기 식의 승진 제도를 가진 우리의 심판 구조에서는, 담당 재판부로 하여금 상급심 법원 특히 대법원,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게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예규는 국회의원, 국무위원, 법조인 등이 피고인인 형사사건, 중요 선거범죄 사건, 중요 부패범죄 사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구속영장, 구속적부심사에 관한 결정, 보석 또는 구속집행정지에 관한 결정 및 언론기관이 당사자로 된 민사·행정사건의 경우까지 모두 보고케 하고 있다. 이 역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라는 헌법 제103조에 반한다. 나아가 대법원은 법률에서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 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한 제108조 및 법관은 최소한 징계처분에 의하지 않는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제106조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때문에 이들 사항은 헌법, 법률 또는 최소한 대법원규칙으로 정해야지, 마치 통첩행정과 같은 ‘통달 사법’ 식으로 정할 일이 아니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기 전인 1992년에,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영장주의는 사법권 독립의 원칙에 의해 신분이 보장되고 있는 법관의 판단에 의해서만 결정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 바 있다. 또한, 헌재는 그 밖에 검사나 다른 국가기관의 의견에 의해 좌우되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의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이 예규는 법관을 결국 권력의 정점이 되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의중에 매이게 한다는 점에서, 대법원장이 검찰과 변호사 단체의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역점을 두는 ‘공판중심주의’의 진의를 무색케 한다. 영장기각률의 급속한 증가를 인권 차원에서만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제3공화국 당시 정부의 시책을 담은 국가배상법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대법원판사 등 9명 모두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됐다. 사법이 임면권자의 눈치를 보는 이른바 ‘코드사법’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대법원은 우리 사법이 관방(官房)사법화하여 법관들이 사법 테크노크라트로 만들어지는 일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6. 12. 2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