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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의 '잃어버린 40년' - 사공일
	2006-12-04
필리핀의 '잃어버린 40년' 정말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흐트러진 한·미동맹 관계에 기반한 국가안보도 걱정이지만, 기업할 의지를 북돋워 주지 못하고 도리어 시장 기능 작동에 장애가 되고 있는 정부의 각종 규제와 제도 등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고 있어 더욱 걱정되는 것이다. 일부 노조와 시민 단체들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국가 명운이 걸린 주요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불법 무력시위를 벌여도 용납되는 우리의 사회상 또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기성세대와 사회 지도층이 국가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국정을 흐트러뜨리고 시대착오적 행동을 하는 대가로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후손들이 엄청나게 큰 고통을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잊고 있는 것인가. 필자는 며칠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창설 40주년 기념 특별강연을 위해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다녀온 적이 있다. 절대빈곤에 찌든 마닐라의 서민 생활상과 열악한 교통·통신 등 사회간접자본 실태를 보며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필리핀은 1960년대 중반에 ADB를 유치할 때만 해도 당시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가장 앞선 나라였으며, 마닐라는 사회간접자본 등 제반 여건이 아시아지역에서는 일본의 주요도시 다음으로 잘 구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ADB 유치도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 1960년대 초반의 필리핀은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우리에겐 마치 선진국처럼 부러워할 정도의 나라였다. 현재 문화관광부와 미국대사관 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광화문 앞 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쌍둥이 건물과 장충체육관이 필리핀 건설회사의 설계·감리로 1961년과 1962년에 각각 준공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소위 ‘개발연대’의 첫해로 볼 수 있는 1962년에 우리의 국민 1인당 소득은 87달러였다. 그때 필리핀은 이미 우리보다 거의 3배인 1인당 220달러의 소득 수준에 있었다. 그런데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두 나라 국민 생활수준은 어떠한가. 작년에 우리의 1인당 국민 소득은 1만6000달러 선을 넘어선 반면, 필리핀은 우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300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더욱이 현재 필리핀 사회의 소득분배는 극단적 양극화로 중산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있다. 그리고 국내 투자가 저조하고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아 현재 필리핀의 많은 젊은 근로자는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물론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해외취업이 가능한 선택된 일부 근로자에게 국한된 것이다. 현재 공식 통계에 잡힌 필리핀 해외근로자 수는 필리핀 총 취업 인구의 약 3% 수준인 88만여 명에 이른다. 2005년에 이들이 공식적으로 송금한 금액만도 약 11억 달러에 달했으며 현재 필리핀 경상수지 흑자 시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필자는 결코 남의 나라 험담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필리핀이 더욱 잘되기를 바람과 동시에 과거의 필리핀 지도층이 범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측면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경제 성장이란 복리(複利)의 게임이다. 그래서 고성장국과 저성장국 간의 국민소득과 생활수준의 격차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크게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기업 투자여건 개선을 통한 국내외 기업 투자 촉진과 한·미 FTA 등을 통한 개방과 개혁, 그리고 선진제도의 도입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최대한 함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고 법치(法治)를 이룩하는 일은 기업 투자여건 개선이란 측면에서 경제성장 잠재력 향상과 직결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바른사회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6. 12. 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