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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의 소리없는 반란 - 정갑영
	2006-11-16
시장의 소리없는 반란 어쩌다 정부의 신뢰가 이렇게까지 추락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집을 사면 낭패”라는 무책임한 말을 국정 최고 게시판에 올린 것도 가관이지만, 수많은 분노의 댓글이 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웅변하는 것 같아 더욱 마음 아프다. 이런 일이 몇 사람 물러난다고 쉽게 해결되겠는가. 11·15 대책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신뢰 위기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다. 정부는 그동안 시장이 정상이 아니라고 말해 왔지만, 이제 보니 누가 정상이 아니었는지 분명해진다. 소수 몇 %만 세금으로 징벌하면 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던 집념을 어떻게 정리할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시장은 오히려 어설프게 쏟아져 나온 정책을 비웃으며 가격에 날개를 붙여 저주를 보내고 있다. 이런 참담한 모습을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명 높은 프로크루테스가 떠오른다. 그는 널리 알려진 대로 지나가는 행인을 초대해서 하나뿐인 쇠 침대에 재웠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나그네들을 쇠 침대의 규격에 맞추도록 괴롭혔다는 이야기다. 다리를 늘리거나 줄이면서 쇠 침대에 맞추게 했다니 얼마나 고통을 받았겠는가. 지금도 이 신화를 인용하여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이념과 기준에 모든 것을 억지로 맞추려 하는 아집과 편견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라고 말하지 않는가. 실제로 최근 정부는 시장의 흐름이나 여론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쇠 침대보다 더 견고한 집념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다 침대 규격이 적합한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먼 훗날 상당한 부작용을 불러올 사안들이 많다. 부동산도 결국 시장의 논리를 고집스럽게 외면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비싼 지역에 공급을 늘려야 하는 시장 논리를 역행한 채 오히려 공급을 규제해 왔다. 대신 신도시 개발로 주변 집값을 올려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지 않았는가. 투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균형 발전을 기치로 전 국토의 개발을 주도하여 왔으니 온 나라가 부동산 열풍에 휘말리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시장의 반란인 셈이다. 이런 정책이 어디 부동산뿐인가. 출자총액제도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려는 공정위도 마찬가지다. 부채비율과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폐지하겠다던 공약은 저버리고, 이제는 변형된 형태로 새로운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 핵심 기업에 대한 순환 출자로 다시 규제하고, 지주회사의 모형을 고집스럽게 요구하는 것도 아집과 편견의 소산이 아니겠는가. 실제 지배구조는 시장과 문화적 여건에 따라 나라마다 서로 다른 형태로 다양하게 진화한다. 누구도 가장 이상적인 지배구조를 정의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정부가 특정 모델을 기업에 주문할 수 있겠는가. 대주주의 횡포를 규제한다지만 지배구조는 주주의 몫이지 더 이상 정부가 간여할 일이 아니다. 이제 대기업을 정부가 원하는 형태로 개편해야겠다는 아집은 버려야 한다. 30년 전의 침대 규격으로는 글로벌 기업을 재울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지분이 40%가 넘고, 소액주주가 수두룩한데 왜 정부가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걱정해야 하는가. 기업이 쓰러진다면 이상적인(?) 지배구조가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경제를 특정 이념이나 형평의 논리로 접근하면 시장은 반드시 엉뚱한 결과로 저주를 보낸다. 이미 우리 기업들의 국내 투자는 몇 년째 침체를 거듭하고 있고, 오히려 해외 투자만 급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경제뿐만이 아니다. 교육의 평준화와 특정 인물만을 고집하는 인사 등 국정의 곳곳에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버젓이 살아 있다. 행여 아직도 시장보다 강한 정부를 꿈꾼다면 소리 없는 시장의 반란이 온 나라를 또다시 엄습하게 될 것이다. 이제라도 아집과 편견을 버리고 글로벌 감각으로 시장 흐름을 따라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내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원주부총장 · 경제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조선일보 2006. 11. 1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