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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정치’를 위한 소망 - 박효종
2006-10-04
‘한가위 정치’를 위한 소망 추석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시절,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추석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풍성한 어떤 것일까, 둥그런 어떤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정부나 정치인들도 그 특유의 정치감각으로 느끼는 소회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추석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귀성객들은 고향에 가서 선물보따리도 풀어놓겠지만, 이야기 보따리도 함께 풀어놓을 것이다. 이에 질세라 고향의 친지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이야기꽃’이 필 것이다. 이게 바로 추석민심이 되는 것인데, 그 민심의 색깔이 어떨지 궁금하다. 어쨌든 민심에 귀를 기울이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그렇지 못하고 “나는 잘했는데 왜 사람들이 몰라주느냐”고 타박하면, 오만한 정부가 되는 것이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추석민심보다 더 절박하게 귀를 기울이고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자연이다. 추석이 알려주는 자연은 풍요와 결실일 터이다. ‘풍요의 계절’에 ‘불임(不姙)의 정치’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을씨년스러운 일이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참여정부가 주도해온 정치를 풍요의 정치로 평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무엇인가 큰소리도 내고 갑론을박하며 로드맵도 많이 짜고 최근에는 ‘비전 2030’을 내놓기까지 했는데,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고 했던가. 별로 기억할 만한 결실과 보람이 없다. 먹을 것이 풍요해졌는가. 일자리가 많아졌는가. 아니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적어졌는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전망이 커졌는가. 참여정부의 정치에 결실은 없는데, 통치 스타일은 사납기만 하다. 열매를 맺는 일 없이 수풀을 우거지게만 하는 잡초처럼 말이다. 정치가 풍요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간디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라고 했다. 그것도 의미있는 말이지만, 사람들의 불안을 없애주거나 최소화시켜주는 것을 정치의 임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부가 사람들의 불안을 없애기는커녕 가중시킨 것은 없는가. 지금 민생은 참으로 어렵다. 낮은 경제성장률이 말해주는 것이긴 하지만, 사업은 사업대로 안되고 장사도 힘들고 취직도 안된다. 공무원시험이 있으면 최소한 몇백 대 일이다. 또 국가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현 정부가 어떻게 했기에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인가. 헌법재판소장은 왜 아직까지 공석인가. 야당이 ‘몽니’를 부려서인가, 아니면 정부의 고집스러운 ‘코드정치’ 때문인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떤가. 정부는 북한을 포용하면 북핵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들이 잘 풀릴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어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북한 외무성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포용력을 발휘해 최선을 다해왔는데 왜 항상 북한은 큰소리를 치고 우리 정부는 말 한마디 변변히 못하는 ‘못난이’가 되는가. 우리 국민이 이리저리 도와준 게 어딘데, 언젠가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이번에는 핵실험을 한다고 위협하는가. 참여정부의 포용정책이 유화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이 와중에 낭보가 없는 건 아니다. 반기문 외교통상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거의 가까워졌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이런 반가운 소식이 불안한 소식에 비해 가뭄에 콩나듯하고 불안의 진원지가 정치라는 데 있다. 우리는 언제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정치를 기대할 수 있는가. 정부는 이번 추석에 한가위 보름달을 보고 자연의 풍요로움을 배워야 한다. 공연히 말만 앞세우고 허망한 미래만 그리지 말고 한번 ‘둥근 정치’를 해보라. ‘둥근 정치’를 하기에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하는 편이 낫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6. 10. 4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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