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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뛸 수 있게 하라 - 류동길
2006-08-22
기업을 뛸 수 있게 하라 한국경제는 선진화를 달성하기도 전에 조로(早老)현상을 보이는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경기는 이미 꺾였고 한국경제는 일시적 경기부진이 아니라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들어갔다. 내년 경기는 세계 경기의 둔화로 더 나빠질 것이다. 현대 삼성 등 주요 민간경제연구소의 진단이 이렇다. 이런 진단이 아니더라도 국민의 체감경기는 오래 전부터 겨울이었다. 지난 3년간(2003~2005) 연평균 성장률은 3.9%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경쟁국인 중국(10%) 홍콩(6.4%) 대만(4.5%) 싱가포르(6.4%)에 뒤졌을 뿐 아니라 세계평균(4.4%)에도 미치지 못했다. 왜 우리만 저조했는가. 첫째, 경제와 상관없거나 경제에 부담을 주는 일에 매달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사 정리, 사학법, 신문관계법, 수도이전 위헌결정에 이은 행정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경부고속철도와 새만금사업 차질 등을 보면 경제실적 나쁜 게 우연한 일이 아니다. 수 백조 원의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자주국방’을 내세워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겠다고 서두른다. 그럴 경우 안보도 걱정이지만 경제에 힘쓸 여유가 과연 있겠는가. 해야 할 일이라도 때가 있고 우선순위가 있다. 국가채무는 2002년 말 133조6000억원에서 2006년 말 280조원, 2007년 말에는 300조원을 넘어선다. 노무현정부 5년간 국가채무 증가속도는 너무 가파르다. 나라빚은 늘어나고 민생은 어려운데 이것저것 다 하겠다니 경제는 멍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둘째, 경제정책 방향이 애당초 잘못됐다. 성장과 분배의 동반성장을 이루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성장은 뒷전으로 밀렸다. 성장을 말하면 반(反)개혁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올해 들어서는 양극화를 내세워 국민을 네편 내편으로 갈랐다. 소득불균형 또는 빈곤 문제라고 해야할 걸 굳이 양극화로 표현했다. 선거를 의식해서 내편을 많이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야 하는데 일자리를 창출할 기업을 옥죄기만 했다. 셋째,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의 조성 또는 방치다. 2003~2005년간 설비투자 연평균 증가율은 2.6%로 참담하다. 정부는 2003년부터 3년6개월 동안 공무원을 2만6000여명이나 늘렸다. 위원회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각종 위원회가 생겨나고,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정부조직은 커졌다. 여당 대표는 기업인 사면과 출자총액제한제도 철폐를 기업인 대표들에게 약속하고, 출총제 폐지 언급에 대해 경제부총리는 ‘정치적 행보’라고 일축하는가 하면 공정거래위원장은 순환출자금지 등 또 다른 규제방안 도입을 이야기했다. 광복절 대통령 특별사면에서 경제인은 제외됐다. 여당과 정부와 청와대가 서로 엇박자를 놓고 있다. 경제정책의 구심점이 없다는 증거다. 특별사면의 경우 경제인을 특별 대우하자는 게 아니라 정치인은 사면되고 경제인은 안 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노동계의 불법파업은 시도 때도 없다. 기업과 경제에 주는 부담을 말해서 무엇하나. 공권력이 불법파업에 밀리는데 기업이야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해외 언론은 한국의 ‘파업은 하나의 의식(儀式)으로 자리잡았다’고 우리를 비웃는 기사를 쓰고 있다. 경제 나쁜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오늘의 경제난은 경제정책의 구심점 부재(不在), 불투명한 정부정책과 정책혼선, 경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지도력의 무능에서 비롯됐다. 그렇지 않고 한창 기세를 올려야 할 한국경제가 비틀거릴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규제를 없애고 기업의 기(氣)부터 살려라. 우리 사회가 믿을 건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과 기업인이다. 기업 발목을 잡으며 경제를 걱정하는 염치없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6. 8. 17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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