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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억달러 규명 이렇게 - 김일섭
	2002-10-02
4억달러 규명 이렇게 최근 정치권에서는 2000년 6월 당시 자금난에 빠져 있던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통해 미화 4억달러(약 4천9백억원)를 북한 정부에 지원했다는 의혹을 둘러싸고 공방이 치열하다. 이 건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회계전문가의 입장에서 이 사건의 진위를 확인할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한나라당의 주장은 "2000년 6월 산업은행이 당좌대월 형태로 4천억원을 현대상선에 대출해 줬고, 현대상선은 이 돈을 3개 지점에서 수표로 인출해 국가정보원에 전달했으며, 국가정보원은 이 돈을 국내에 있는 외국계 은행 등을 통해 자금 세탁한 후 북한의 서류상 회사로 송금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보도자료를 내고 "2000년 6월 7일 일시 당좌대월 4천억원, 6월 29일 산업운영자금 9백억원을 긴급 지원했다. 그 해 9월 28일 3백억원, 10월 28일 1천4백억원 등 일시 당좌대월 1천7백억원을 회수했고, 산업운영자금 1백억원은 2002년 2월 26일 회수했다"며 자금 지원 사실을 시인했다. 한나라당은 현대상선의 2000년 반기보고서에는 5월 27일에 빌린 1천억원만 기재돼 있다며 6월에 빌린 4천억원 전액이 누락됐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측은 "6월 말까지는 1천억원만 빌렸고 3천억원은 7월에서 9월 사이에 빌렸다. 국가정보원의 개입이란 있을 수 없다. 4천억원은 기업어음(CP) 상환(1천7백40억원)과 선박 용선료 지급(1천5백억원), 선박금융 상환(5백90억원), 회사채 상환(1백70억원) 및 기업 운영 자금(9백억원)으로 사용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산은 보도자료대로 6월 7일자로 대출이 일어났는지는 은행의 자금 관련 기록을 검사하면 바로 밝혀진다. 그 금액이 같은 날짜에 현대상선의 계좌에 입금됐는지 여부도 현대상선의 기록을 검사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산은의 장부는 금융감독원이, 현대상선의 장부는 주주인 채권은행들이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검사할 수 있다. 만일 4천억원이 6월 7일자로 현대상선의 계좌에 입금되지 않았다면 자금 유용의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 그런데 현대상선의 반기 사업보고서를 보면 산은으로부터의 당좌차월은 2000년 6월 30일에 처음으로 1천억원이 보고(만기일 2000년 12월 29일)됐다. 그 금액은 2000년 말에 1천3백억원, 2001년말에는 2천3백억원이 됐으며, 금년 6월 말 현재 1천1백90억원으로 감소했다. 이자율은 연 8.39%(타 당좌차월은 연 10.5%에서 13.71%)로 낮아졌다. 이 외에 2000년 말 현재 산은으로부터 외화운영자금으로 차입한 금액 1천6백65억원이 신규로 발생했으며, 올 6월 말에는 차입 금액이 2천5백11억원으로 증가했다. 현대상선의 산은으로부터의 단기 대출금 총액은 2000년 6월 말 1천9백억원에서 2000년 말 3천8백65억원, 2001년 말 4천8백22억원, 2002년 6월 말 4천5백1억원으로 각각 변동하고 있다. 2000년 3분기 중에 상환했다는 1천7백억원은 외화대출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이런 기록만 놓고 보면 산은이 빌려준 단기대출금 4천9백억원은 2001년 말의 현대상선 장부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자료만을 토대로 판단하면 산은에서 대출된 자금들이 현대아산으로 건네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현대상선의 장부 기록과 산업은행의 보도자료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현재로는 돈을 빌려준 산은의 주장이나 현대상선이 제시한 돈의 용도들은 모두 맞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대출시점과 돈의 사용 시점에 시차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 부분을 먼저 가려야 할 것이다. 시차가 확인되면 그 기간에 돈을 다른 용도로 굴렸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산은에서 나간 수표 추적이 불가피하다. 금액이 크고 거래상대가 분명한 만큼 추적 작업 자체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실명법 위반을 들어 수표추적 등의 계좌조사를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과연 금융당국이 과거에도 이번처럼 일관되게 '법대로' 계좌조사를 해왔는지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사실확인 의지다. 더욱이 현대상선은 자동차운송부문 매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거래가 성공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도 이번 파문의 진실이 조기에 규명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金一燮 (이화여대 경영부총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중앙일보 2002. 10. 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