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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사회로 가는 길 - 함인희
	2006-07-12
선진사회로 가는 길 지난 6월 말 조카 결혼식 참석차 미국을 다녀왔다. 결혼식은 신랑신부가 함께 다니던 미들베리 대학의 채플(대학교회)에서 열렸다. 미들베리는 보스턴에서도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전형적인 대학타운으로,매년 400명의 신입생만을 뽑아 전교생이 1600명에 불과한 명실공히 '작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마을이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미국까지 건너가 진짜(？) 시골 풍경을 만끽하는 뜻밖의 기회를 가졌다. 캠퍼스를 조금만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 위로 대규모 젖소 목장이 나타나면서 차 속으로 스며드는 특유의 향기(？)에 모두들 코를 움켜쥐곤 했고，오랜만에 은하수가 유유히 흐르고 온갖 별들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밤하늘 아래서 탄성(歎聲)을 지르곤 했다. 미들베리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 가족은 작고 아담한 고객맞춤형 스타일의 여인숙에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아침，가족들과 어울려 마을 산책을 나간 길에 우리는 꽤나 인상적인 장면과 마주쳤다. 길 건너 도로변에 위치한 정갈한 집 앞에 노란색 표지판이 하나 서 있었는데，거기엔 검은색 글씨로 'Deaf Person(청각 장애인)'이라 쓰여 있었다. 필시 그곳엔 청각 장애인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한 표지(標識)임이 분명할진대，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알아보니 이곳 청각 장애인이 거주하는 집 앞을 지날 때엔 각별히 차량 속도를 줄여서 청각 장애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주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특별히 청각 장애인의 경우는 외부적으로 장애 식별이 쉽지 않아 상대방이 보내는 자동차 경보음을 듣지 못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기에，노란색 표지판을 설치하게 됐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생각해보니，집 앞에 표지판을 세우긴 고사하고 행여라도 누가 알까봐 쉬쉬할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싶어 영 마음이 불편해왔는데， 마침 청각 장애인을 남편으로 둔 동생으로부터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청각 장애인을 위한 표지판 설치 요구가 있었건만 영문도 모른 채 묵살됐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네 가족은 포이동에 위치한 농아교회에 다니고 있다. 이 곳 농아교회엔 주말이면 남녀노소 청각 장애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니，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주위를 지나가는 차량들이 속도를 줄여 운행할 수 있도록 일정한 표지판을 설치해 달라는 주문을 수차례나 해당구청에 제기했었다는 것이다. 한데 해당 구청에선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란다. '지역주민들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든가 '선례가 없다'든가 '예산이 없다'든가 등등의 상투적 변명을 모두 감안한다 하더라도,이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오는 부당한 처사요 무감각의 소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청각 장애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과 관계된 일일진대,표지판 하나 세우는 일에 그토록 무관심할 수 있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가 꿈에 그리는 선진국일수록 개인적 수준과 사회적 차원 공히 선진국에 걸맞은 성숙한 의식을 보유하고 있음에 주목해야할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돼볼 줄 아는 능력에 더해，나의 권리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 또한 귀중함을 체화한 후에，다른 사람의 약점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차별하기 보다 그 약점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승화시켰을 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낼 때만이 우린 비로소 선진국민으로서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 차원에서 이들을 존중해주고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음이야말로 선진국을 가늠하는 진정한 지표가 아닐는지. 咸仁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바른사회 정책위원) 출처 - 한국경제 2006. 7. 1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