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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 일탈을 새 정치문화라고 우기나 - 박효종
	2006-06-27
국정 일탈을 새 정치문화라고 우기나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미국 역사의 순환’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공화제에는 등뼈(backbone)가 있다”고 했다. 그 ‘등뼈’라는 것은 공화제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등 어떤 나라든지 공화제를 실시하면 그 나라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어 ‘참주정치’나 ‘전제정’ 혹은 ‘왕정’에 이르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공화제’를 만드는 것 자체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서, 언젠가는 ‘제왕적 대통령’이 출현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줄곧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갖고 나라를 운영해 왔다”는 것이 미국의 정치를 역사적으로 조망한 슐레진저의 결론이다. 슐레진저는 “케네디까지는 그런 두려움이 있었으나 그 후로는 정치 현장에서 공화제에 대한 두려움을 찾을 수 없게 됐고, 따라서 선동정치가 등장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 말이 왜 우리에게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가. 한국도 민주화된 이후 국정을 주도하게 된 세력이 나라를 경영하는 데 있어 두려움을 갖는 것을 점차 잊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아닌게 아니라 ‘정치적 뼈대’와 ‘정치적 금기사항’에 대한 의식이 실종되됐는 의구심을 입증할 만한 사태들이 허다하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과는 달리 ‘선출된 권력’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방하다는, 이른바 ‘마키아벨리적 사고’가 참여정부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의 고비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승리했다”거나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들이 국가 기념일마다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이른바 앙시앵 레짐(구 체제)을 척결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보니 그 명분 앞에 거칠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 법안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자 그 결정을 존중하기보다는 보수 성향의 재판관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여당 국회의원들이 공격하고 나서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권력의 ‘핵심적 이익’ 앞에는 헌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헌법재판소의 권능에 대한 존경심도 창백해진 것이다. 또 정부와 여당의 지지도가 급격히 내려가자 “대통령은 21세기에 사는데 국민은 독재시대의 문화에 젖어 있다”는 말을 하는 홍보수석도 있었다. 인사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코드인사’는 물론, 같은 사람을 반복해서 자리만 바꾸는 회전문 인사가 여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자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데 누구를 두려워하랴” 하는 식의 인사 강행은 ‘무서움이 없는’ 국정 운영의 대표적 사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실한 민심의 심판이 있었는데도 그 심판을 도무지 두려워하지 않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엊그제 한 특강에서 “참여정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가장 원형적으로 실현해가는 정부”라고 강변했다. 또 “새로운 정치문화 속에서 국민의 인식과 관행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뭐 저렇게 하나’ 그런 불만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5·31지방선거에서도 그랬던 것 아닌가 싶다”고도 했다. 호기있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무서운 것이 없나 하는 느낌을 가눌 길 없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조차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곶감’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정권 실세들은 5·31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여론의 한 흐름’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에서 일탈해온 태도를 반성하기보다는 새로운 정치문화로 포장하려는 강심장을 보이고 있다. 지금 국민은 그들의 강심장을 보면서 참여정부의 ‘정치적 등뼈’는 어디에 있나 하는 의문을 토로한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져야 참여정부는 두려움을 실감할 것인가.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6. 6. 2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