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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을 ‘탄핵’한 제4회 지방선거 - 박효종
2006-06-01
정권을 ‘탄핵’한 제4회 지방선거 열린우리당의 최악의 참패와 한나라당 압승으로 막을 내린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이미 예견된 일이긴 했으나, 막상 현실로 드러나니 충격적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공약을 제대로 검증하자는 매니페스토 운동도 있었다. 한나라당의 공천헌금 비리도 터졌고 지방권력을 심판하자며, 야당 싹쓸이만은 막아달라는 읍소도 있었다. 하지만, 정권을 탄핵하겠다는 성난 민심 앞에 그 모든 것들이 창백해졌다. 노무현정권은 정치적 비리나 부패는 적었을지 모르나, 무능했다. 집권초 거대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던 정부 여당이 탄핵정국을 계기로 과반수 의석의 어엿한 정권으로 변신했으나, 한 게 별로 없었다. 왜 한 게 없겠는가. 야무지고 똑소리 나게 한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로드맵 짜는 소리만 요란하고 소모적 논쟁만 많았을 뿐, 이룬 것은 없는 불임(不妊)정권이었다.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먹고살기가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하는가 하면, 중산층은 세금폭탄으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말로 천냥 빚을 갚는 사람도 많은 법인데, 이 정권은 말을 통해 언제나 천냥 빚을 지고 있었다. 또 양극화나 교육문제, 부동산문제 등 정책적 현안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모든 문제에서 ‘우리’와 ‘그들’을 갈랐다. ‘우리’에는 배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그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냉소적이었다. 자신들은 열심히 피리를 부는데 왜 국민은 춤을 추지 않느냐면서 불평을 해댄 정권의 오만과 독선이 결정적으로 국민을 격분시킨 것이다. 그동안 재보선이 참패로 끝날 때마다 회개하겠다고 했지만, 회개는 시늉이었을 뿐, 고침은 없었다. 선거전에 다급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반성에 국민이 냉담했던 것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생각났기 때문일까. 배를 띄우는 것도, 배를 뒤엎는 것도 강물이라고 했던가. 민심은 격랑이 되어 배를 엎었다. 한때는 개혁 여당이라며 위세도 당당했는데, 이제 포말 정당이 될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이번 선거의 참패는 ‘병가지상사’를 넘어 절체절명의 위기다. 정부 여당이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대증요법으로 풀어가서는 안된다. 분당이나 정계개편 등 정치공학적인 발상으로 이 위기를 넘기려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 사람들이 분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속았다고 허탈해하고 실망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이제까지 잘해 왔는데 왜 국민이 몰라주느냐” 하며 야속한 생각이 들면,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처럼 커다란 거울 앞에 가서 “왜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서 우리를 참패시켰는가” 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그러면 아마도 거울은 “너는 너 자신을 너무나 몰랐다”며 델포이신전의 신탁을 되뇌지 않을까. 한나라당은 압승했다. 하지만 이 압승에는 거품이 끼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를 전적으로 자력에 의한 성적표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물론 한나라당이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결과를 2007년 대선의 예비단계로 본다든지 대선 승리를 따놓은 당상이라고 지레 짐작한다면,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은 잡았는지 모르나, 유권자들의 ‘영혼’은 잡지 못했다. 성공보다 더 큰 실패가 없다는 말을 상기해야 한다. 자전거가 움직이려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하고 팽이가 돌아가려면 끊임없는 채찍질이 필요하다. 체질 개선은 만족스럽게 되었는가. 돈을 밝히는 속물 근성은 버렸는가. 권력을 즐기기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할 마음은 있는가. 승리의 샴페인을 터트리기보다 이런 성찰적 질문들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일 때 한나라당이 변했다는 평가를 국민은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6. 6. 1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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