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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치에 안맞는 남북정상회담 제의 - 홍진표
	2006-05-11
이치에 안맞는 남북정상회담 제의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1979년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과 같이 오랜 적대관계의 돌파구를 열고자 종종 정상외교가 동원된다. 남북한 사이에도 정상회담은 박정희 정권 이후 역대 정권에서 계속 시도되다가 김영삼정부 문턱에서의 불발로 김대중정부에서 비로소 실현됐다. 사상 첫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남북 정상이 마주하는 사진 한 장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으며, 만남 그 자체의 프리미엄을 누리는 남북정상회담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이후의 남북정상회담은 실질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의 사실상 조건 없는 남북정상회담 제의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11월 “남북정상회담에 매달리면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를 풀어 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신의 발언과 정면으로 모순된다. 왜 만나고자 하는지, 만나서 무엇을 해결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속칭 ‘묻지 마’ 정상회담을 제시한 셈이다. 지금 남북한의 정상이 만난다면 한반도 긴장의 핵심 현안인 북핵 문제를 결코 피해 나갈 수 없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핵 포기의 의사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거래를 원하기 때문에 남한과의 핵 논의에 관심이 없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정부도 그동안 북핵 문제의 우선해결을 주장하며 ‘선(先) 6자회담, 후(後) 남북정상회담’론을 펴왔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에 의해 6자회담 틀에서 핵 타결이 되기 이전의 남북정상회담은 무의미하거나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정부의 기존 상식적 판단이 갑자기 뒤집혀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길을 잘 열어주면 저도 슬그머니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이런 정책 급변의 의혹을 푸는 단서로 보인다. 오는 6월 예정된 방북에서 DJ가 남북정상회담의 단초를 마련하면 이에 편승해보겠다는 속내를 무척 통속적으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런 발언이 DJ의 방북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정치적 후계자의 서비스인지 아니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험을 들어두자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만남을 구걸하는 방식이 얼굴을 뜨겁게 한다. 현 정부는 ‘김정일 정권을 막다른 길로 몰아 긴장을 높이느니 달래는 것이 낫다’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는 듯한 논리를 펴지만, 정상회담 효과에 대한 국민 위주의 판단에서 이렇듯 쉽게 벗어나는 것을 보면 자신들의 입지를 우선시한 정략적인 대북정책을 편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한 개인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인권을 말살하는 독재정권의 무조건 지원은 결국 북한 인민의 한없는 고통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한 탈북자는 절규했다. 그의 이 절규처럼 김정일정권에의 끊임없는 양보와 지원은 북한 주민의 이익도 남한의 양심도 모두 저버리는 것이다. 오직 이미 정책이 아닌 도그마로 굳어진 김정일 1인의 보호정책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내려는 특정집단의 체면과 고집만이 발견된다. DJ의 방북이 민족의 장래에 대한 사심 없는 걱정의 행보라면, 만남 그 자체를 위한 정상회담의 주선이나 국민정서는 물론 남북의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연방제 운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최근 그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밝혀진 고교생 납북자의 송환 문제라도 풀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노 대통령이 그동안 모순된 발언으로 국민에게 숱하게 혼란을 주었기 때문에 말 하나하나를 쫓아 분석하는 것이 이미 부질없는 일이 돼 버렸지만, 남북 문제와 외교정책에서만은 품격과 예측 가능성을 유지해 주기를 바란다. 적어도 이 대목은 국민 모두의 자존심과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 바른사회 정책실장) 출처 - 문화일보 2006. 5. 1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