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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방북 주목한다 - 이대근
2002-09-13
고이즈미 방북 주목한다 오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전후(戰後)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 김정일(金正日)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고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 수교회담에 돌파구를 마련코자 하고 있다. 북.일간의 수교회담에서 다뤄질 핵심 사안은 두가지라 할 수 있다. 일본인 납치문제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물질적 보상(청구권)문제다. 이 가운데 후자의 보상 문제가 더욱 중요하고, 이번 고이즈미의 방북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타결되느냐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이 당면의 북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북한 사회를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고이즈미의 방북이 어떤 극적인 타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 마치 1965년 한.일 수교 당시 교착상태에 빠진 회담을 '金-오히라 메모' 한 장으로 타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처럼 말이다. 양측이 지금 절박한 경제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될 공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일본측 사정을 보자. 일본 경제가 90년대 이후 장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최근 들어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경제 회생을 위한 마지막 카드로 이 북.일 수교를 통한 일본 자본의 대북한 러시를 잡은 것은 아닐까. 지난날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총리가 한.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5억달러의 청구권 자금으로 일본 경제에 숨통을 트게 한 전례에서처럼 말이다. 다른 한편 북한 경제는 어떤 처지에 있는가. 한마디로 식량난.에너지난.원자재난 등이 겹쳐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기.수송.통신.물류시스템 등 사회간접자본의 불비(不備)로 외국 자본이 들어가고 싶어도 못들어가는 처지가 아닌가. 북한 경제에는 지금 무엇보다도 투자재원 조달이 급선무다.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한 자금원이라면 남한측의 경협자금,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원,그리고 북.일 수교를 통한 청구권 자금 등 세가지 정도다. 이 가운데 남한의 경협자금과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원은 자금의 성격이나 규모, 북한의 대금 결제 문제, 특히 미국측 사전 양해의 필요성 등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오늘의 북한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조속한 북.일 수교와 일본 자본 도입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고이즈미의 방북은 바로 이러한 북한측 요구와 맞아떨어진 결과다. 북.일 수교 과정에서 결정될 청구권 자금의 규모는 지난 한.일 수교 때의 5억달러(무상 3억, 유상 2억달러)를 기준으로 대체로 50억~1백억달러 사이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그 중간인 75억달러 정도로 낙찰된다면 이는 2001년도 북한 국민총소득(GNI) 1백57억달러(한국은행 추계)의 무려 48%에 해당하는 규모고, 지난날 한.일간의 5억달러가 그해 한국의 국민소득 30억달러의 17%에 불과했으므로, 청구권 자금이 경제에 미칠 영향력은 65년 당시의 한국보다 지금의 북한 쪽이 훨씬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번 고이즈미의 방북이 수교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앞으로 막대한 일본 자본이 북한으로 흘러들고, 그것은 북한 경제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전망이다. 우선 일본의 잉여미 등 소비물자의 대량 공급으로 당면의 식량난 등은 간단히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북한의 낙후된 사회간접자본이나 기간산업까지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마치 지난날 한국이 일본 청구권 자금으로 경부고속도로.소양강댐.포항종합제철 등을 건설하듯이 말이다. 일본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북한 기간산업 건설을 기대하기란 현재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북한이 스스로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이란 대원칙을 포기하고 시장경제원리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고이즈미 총리를 불러들여 직접 담판을 시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부적으로 무슨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북.일 수교에 따른 일본 자본의 북한러시가 앞으로 북한 경제, 나아가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가. 그것이 북한 사회를 개혁.개방의 길로까지 유도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고이즈미 방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대근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중앙일보 2002. 9. 13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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