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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전범재판 - 제성호
	2006-03-14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전범재판 ‘발칸의 학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이 11일 최종 선고를 앞두고 네덜란드 헤이그의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다. 20세기 악명높은 철권 통치자의 사법적 단죄를 기대했던 수많은 피해자와 유족,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전세계인들에겐 더 없이 허망한 일이었다. 밀로셰비치는 1989년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91년 유고연방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크로아티아와 전쟁을 감행했고, 92년에는 회교도들의 ‘인종청소’를 목적으로 보스니아 내전을 벌여 7000여명의 이슬람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98년엔 코소보사태를 일으켜 100만명 이상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고향에서 내쫓기도 했다. 10년여의 재임기간에 그가 남긴 것은 전쟁과 폐허, 독재와 인권 탄압, 기근과 가난, 난민과 유랑, 국제사회로부터의 제재 등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것들뿐이었다. 밀로셰비치는 국제여론에 따라 2001년 6월 60여건의 전쟁 및 반인륜 범죄, 집단살해죄 혐의로 ‘옛 유고 전범재판소’(ICTY)에 기소됐고 이듬해 수감됐다. 4년여를 끈 재판의 결과 그는 올해 상반기에 종신형이 선고될 예정이었다. 밀로셰비치의 쓸쓸한 퇴장은 히틀러, 폴 포트, 후세인, 피노체트 등과 함께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더불어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그의 삶은 러시아 출신 국제법학자 미르킨 구에체비치의 명제가 지금도 타당함을 웅변해준다. 1917년의 볼셰비키혁명 직후 프랑스로 망명한 구에체비치는 ‘헌법의 국제화’(1933)라는 책에서 ‘국내적 자유’와 ‘국제적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갈파했다. 곧, 자유와 인권을 말살하는 독재자는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평화를 유지하려면 대외적 안전보장의 확보만으론 부족하고, 각 국가들에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체제를 건설해야 한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이같은 사상은 인권의 국제적 보호 강화와 유엔인권위원회의 창설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지도자를 잘못 만나 억압과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북한도 여전히 독재의 어두운 그늘 밑에 있다. 이런 점에 비춰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정상회담이나 ‘낮은 단계 연방’ 등 초보적인 통일구조의 급조가 아니라, 북한 주민의 인권 신장과 독재체제의 민주화라고 하겠다. 이것이 진정 항구적인 평화로 가는 첩경이 될 것이다. 밀로셰비치가 전쟁의 명분으로 내건 것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였다. 히틀러의 ‘아리안 민족주의’는 유대인 단종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귀착됐다. 폐쇄적 민족주의의 극단성을 고려할 때 북한의 ‘조선민족제일주의’나 ‘민족공조 지상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그간 밀로셰비치 재판을 위해 10억달러의 비용을 들였고, 수만 장의 소송서류와 수백 명의 증인을 준비했지만, 결국 거물급 전범의 재판이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기에 국제 전범재판소의 신속한 심리와 효율적인 운영이 당면과제로 제기된다. 98년의 로마 규정에 의해 설치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밀로셰비치 재판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독재와 인권 탄압, 대량 살상 등의 오명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밀로셰비치의 생전 철권 통치를 되돌아보면서 북한 주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발표된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도 북한을 벨로루시 쿠바 짐바브웨 이란 미얀마 중국 등과 함께 대표적인 인권유린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와이 주립대학의 밴 다이크 교수는 지난 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ICC 회부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무쪼록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개선노력이 김정일 정권의 반인륜 범죄 중단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6. 3. 1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