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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정부 3년에 대한 평가 - 박효종
	2006-02-24
노무현정부 3년에 대한 평가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오늘로 만 3년이 된다. 이 시점에서 문득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언이 생각나는 것은 집권 3년이면 업적이 나올 만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시스템적으로 국정운영을 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協治)의 민주주의’를 해왔다고 공언하고 있다. 또 “외교도 초과 달성됐고 경제도 호전됐으며 한미동맹도 더 이상 굳건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자찬한다. 과연 그런가. 민심은 참여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낙제점을 주고 있다. 어제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국정운영 지지도가 22.9%로 나타난 것이 이를 웅변한다. 참여정부는 무엇인가 하겠다는 약속만 남발하고 ‘로드맵’만 잔뜩 짰지, 정작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불임(不姙)의 지도력’인 셈이고, 생명력만 왕성했지 맺는 열매는 거의 없는 잡초에 비유될 수 있는 ‘야성(野性)의 정치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 들어와 냉소적인 의미를 갖는 은유적 표현들이 속출했다. “코드를 잘못 끼워 밥솥을 태운 정권”이라느니, “좌회전도 아니고 우회전도 아니며 오히려 역주행을 하는 운전수와 같은 정권”, 심지어는 ‘건달정부’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실적을 내고 싶어하는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정작 일하는 방법은 몰랐다는 평가가 제격일 것 같다. 그래서 ‘아마추어’ 정부다. 제대로 일을 하려면 우수한 인재를 찾아 삼고초려할 정도가 돼야 하겠는데, ‘코드인사’나 ‘보은인사’ ‘지연(地緣)인사’ 혹은 같은 사람을 돌려가며 쓰는 ‘회전문 인사’가 고작이었다. 인사 때마다 ‘왕의 남자’가 누구며 ‘대통령의 남자’가 누구냐 하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수차 공언했으나, ‘좋은 사람’보다 ‘편한 사람’으로 결말이 나자, 대통령의 국정 수행능력이 의심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또, 국정 어젠다 가운데 과거사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무려 1800억원의 예산을 쓰는 16개의 과거사위원회가 중복과 낭비라는 비난을 무릅쓰면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정부의 끈질긴 과거에 대한 집착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성격은 곧 운명(character is fate)”이라고 갈파했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자기 ‘캐릭터’, 즉 ‘성격’은 무엇인가. 자타가 공인하듯 미래를 바라보고 개혁하며 나아가자는 ‘진보주의’라면, ‘과거 돌아보기’는 진보를 표방하는 참여정부의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또, 과거를 바라보는 눈도 이제는 낡은 패러다임으로 평가받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고정돼 있다. 그러다보니 진보 성향의 인사들마저 참여정부의 ‘과거사 청산’에 식상해할 정도로 ‘과거사 피로증’이 만연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이 기대하는 정치가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정치의 정도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실체가 분명치 않은 어젠다를 추구하기보다는 그때그때의 가장 절박한 문제에 매달리는 데 있다. 국민이 가장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고, 아파하는 곳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정치의 기능일 터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불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또 끈질기게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 매달리기도 했는데, 이러한 태도야말로 승부사 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승부사 정치는 청산돼야 할 ‘3김정치’의 역사적 잔재다. 정치공학에 능수능란했던 3김은 걸핏하면 판을 한번에 뒤엎는 승부사 정치를 즐겼고, 당시 국민은 이러한 승부사의 정치에 열광하며 일희일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시대정신도 달라졌다. 정치에 관한 한, 실사구시와 실용주의를 원하는 민심이 현저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실사구시와는 거리가 먼 거대담론은 얼마나 많았던가. ‘자주국방’ ‘동북아 균형자론’ ‘동북아 금융허브’ 등은 분명 야심적인 목표였으나, 실질적인 것으로 국민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양극화 문제의 해법도 국민을 편가르는 거대담론으로 남지 않을까 우려된다. 저출산·고령화·국민연금 등 산적한 현안들에 대해서도 실사구시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선에서 승리한 노 대통령은 ‘반통령(半統領)’이라는 희한한 조어를 만들어냈다. 국민 가운데 절반만이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치의 목표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명약관화했던 셈이다. 통합과 화합에 ‘올인’하는 ‘온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 초부터 비판 언론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시작하여 ‘약자론’을 내세우며 기득권자로 판단되는 사람들에 대한 날을 세웠다. 또, 탄핵정국 이후 대통령으로 귀환하고 난 다음 통합을 다짐했고, 헌법재판소도 통합의 의무를 특별히 당부했지만, 그 약속과 당부는 지켜지지 못했다. 특이한 점은 참여정부는 처음부터 과도한 피해 의식을 가진 사람들처럼 처신해 왔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대통령이 되거나 마이너리티 집단이라도 권력을 잡게 되면 그 전의 회한과 유감은 떨쳐 버리고 관대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이 점에서 달랐다. 이전보다 더 커다란 회한을 곱씹고 닫힌 마음을 노정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투덜이’처럼 불평만 할 뿐, 자신의 정책적 실패나 판단 실패는 인정하기를 꺼려 왔다. “강남집값잡기에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말은 지난 3년 동안 수도 없이 들어왔으나, 재산권을 억압하는 강도높은 반시장적 규제 조치들 때문에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8·31 부동산대책이 성공작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 관련 공무원들에게 표창까지 했으나, 막상 부동산 문제가 풀리지 않자 부동산 투기꾼들의 끈질긴 저항 탓으로 돌린다. 또, 7% 경제성장이나 50만개 일자리 창출의 대선공약이 지켜지지 못하자 ‘시장의 실패’로 호도하기도 하고, 양극화 문제의 원인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나 김대중정부의 인위적 경기부양 정책에 돌린다. 물론 IMF사태나 이전 정부의 정책 실패가 암운을 드리울 수는 있겠지만, 참여정부가 3년 동안 집권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결국 참여정부는 3년 동안 국정 운영에서 자신을 반대했던 50%를 포용하지 못했고 각종 발언과 기념식에서 그들을 기득권자로 몰아세웠다. 그래서 이 50%는 마음이 많이 상해 있다. 존 슈타인벡의 표현을 빌리자면, ‘분노의 포도’를 따고 있는 셈이다. 그들 역시 현 참여정부의 집권세력 못지않게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적지 않은 공이 있는데, 그 공은 어디 가고 “친일파”니 “독재 순응 세력”이니 “기회주의 세력”이니 혹은 “미국인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친미주의자”로 매도되고 낙인찍히고 있기 때문에 깊은 회한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분노와 응어리를 달래지 않는 한, 참여정부는 어떤 국정 어젠다를 추구해도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셈이다.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를 우선으로 하는 ‘반통령’을 넘어서서 반대자까지 아우르는 ‘온통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들만의 참여’보다 ‘모든 이들의 참여’가 이뤄지는 참여정부를 운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차기 선거에서 이길 정도의 표만 확보한다는 생각으로 통합의 문제를 소홀히한다면, 차기정권 창출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분열을 즐긴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교과서포럼 상임대표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6. 2. 2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