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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ㆍ미 FTA '공허한 국익논쟁' - 최병일
	2006-02-22
한ㆍ미 FTA '공허한 국익논쟁' 참여정부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키로 한 것은 의외의 사태다. FTA 추진 자체도 그렇거니와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정권 후반기에 나온 결정이어서 불을 지고 화약고로 들어가는 무모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지난해 정부가 50여개의 FTA를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필자는 반신반의했다. 김대중정부 초기에 한국쪽에서 적극 나섰던 한ㆍ칠레 FTA를 타결시키는데 정권의 모든 시간을 다 소진하고,참여정부는 그 협정의 국회 비준을 받는데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국내산업에 피해가 미미한 중소국가들과 FTA를 맺고 말겠지라고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김대중정부 5년,노무현정부 3년 동안 말만 무성하고 조금도 진전 없는 스크린쿼터 논란을 고려해도 다소 조심스럽긴 하지만 비관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전 필자가 이 칼럼에서 스크린쿼터 논란을 제기한 건 무력감에 대한 성찰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결정은 의외의 순간에 왔다. 정부의 전격적인 쿼터축소 결정은 영화인들을 추운 거리로 내몰았다. 영화산업에서의 다양성 확보라는 스크린쿼터 정책목표를 보면,단순히 쿼터를 축소하는 정책은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쿼터가 축소되면 '저예산 극영화'는 설 곳이 위축될 거라는 영화인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한국영화에 일률 적용되는 쿼터 축소가 아니라,이들 그늘에 선 영화 입지를 확보해줄 수 있는 방식의 쿼터 도입이 해법이 될 수 있다. 지난 수년간 환골탈태한 한국영화산업의 기반을 볼 때,블록버스터형 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같이 보호하는 쿼터는 그 효과가 의문시된다. 한ㆍ미 FTA는 협상시한이 1년도 못되고 설령 합의된다 하더라도 내년 대선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와중에 한ㆍ미 FTA가 국익과 멀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정부 당국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들의 논리는 적절한 보상대책 없이 농민과 영화인 등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FTA 추진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란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전체적으로는 틀린 주장이다. 시장개방이라는 것이 개방의 피해자들을 다시 경제에 진입시키는 효과적 구조조정책 없이 진행될 때 심각한 사회적 혼란과 경제의 이중구조를 초래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적 경험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미 한국정부의 피해산업보상책은 정도를 넘어설 정도로 과도하다는 것이다. 한ㆍ칠레 FTA 비준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심각한 도덕적해이를 우려할 정도로 퍼붓기식 지원책을 내놓았고,작년 쌀 비준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반복됐다. 한ㆍ미 FTA에서도 이러한 전철을 밟는다면 FTA 체결 목표인 경제의 효율성 향상을 위한 성장기반 마련은 화려한 말잔치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한·미 FTA가 필요한 것은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들 때문에 당해왔던 차별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이다. 또 FTA가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 국제정치역학의 재조정이기 때문에 미국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반박 또한 공허하다. 서구 15개국에서 동구권으로 급속히 동진 확대되고 있는 EU의 거대한 경제통합과 중화경제권의 통합 속에서 한국의 선택을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서 신자유주의의 노예가 될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들 반박론자들이 반박하는 냉전시대 사고에 다름아니다. 협상이라는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만나는 부분이 있을 때만 타결되는 것이다. 그 공통 이해 중의 하나가 굳건한 한ㆍ미동맹의 구축이고,양국은 서로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싶어한다. 정부가 험난한 협상을 자청한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협상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제대로 관리돼야 한다. 전문가들 간의 진지한 국익논쟁이 필요하다. 한국정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한국경제 2006. 2.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