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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과의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 박효종
	2006-02-10
'통과의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무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가 3일간의 빠듯한 일정을 끝냈다. 소득은 있는가. 애당초 청문회에 대한 기대는 거창했다. 이미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국회만큼 공식성과 절차의 엄격성을 충족시킬 곳은 없다”며 청문회 도입을 주문한 바 있다. 또 굳이 대통령의 말이 아니더라도 장관 내정자의 사상과 가치관·도덕성에 대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여론의 흐름을 형성시킴으로써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관은 국정을 이끌어 가는 중차대한 자리인 만큼 뜯어보고 또 뜯어보아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대가 이번 각료 인사 청문회를 통하여 어느 정도 충족되었는가. 국민은 청문회 결론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하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것’처럼, ‘법만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법 이전에 ‘법의 정신’으로도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사청문회 제도도 그 법적 측면에 치중하기보다는 제도 안에 내장되어 있는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사청문회의 정신은 무엇인가. 청문(聽聞)이란 글자 그대로 듣는 데 목적이 있다. 듣는 것이 왜 중요한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보는 것에 대한 예찬론도 있을 정도로 눈으로 보고 살피는 것이 귀로 듣고 판단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눈으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범위가 너무 좁은 것이다. 눈으로는 앞이나 옆을 보지 뒤를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또 눈에 뭐가 쓰이면 보이지 않고, 눈을 감아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코드인사’니 ‘보은인사’니 혹은 ‘왕의 남자’라며 아우성을 치는 사람이 많아도, 정작 인사권자가 눈을 감으면 그러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귀로 듣는 것은 다르다. 보는 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눈을 감아도 귀로는 들을 수밖에 없고, 또 듣고 싶지 않아도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귀를 울릴 수밖에 없다. 사실 인사청문회는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귀로 들으라는 자리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한나라당이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장관 내정자인 김우식·이종석·유시민씨에 대해 “절대부적격”이라며 임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자, 청와대는 “인사를 뒤집을 이유가 없다”며 “국회 의견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강변했다. 구차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들을 만한 마음도, 의지도 없는 청문회를 ‘억지춘향’처럼 하는가. 이번 인사청문회의 부실한 운영과 관련하여 “첫 숟가락에 배부를 수 없다”는 속언으로 자위하려는 사람들도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태도를 보면 ‘첫 숟가락’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미국의 경우는 장관 내정자들이 사소한 불법이나 도덕성에 상처받는 사안이 불거지면, 법의 구속력을 따지기 이전에 자진해서 사퇴한다. 같은 제도라도 중국 강남의 귤이 회수(淮水)를 넘으면 탱자가 되는 것처럼, 한국과 미국은 이렇게 다른가. 이렇게 되면 인사청문회는 문제가 있더라도 ‘왕의 남자’라면 일단 쓰고 보는 ‘가능성의 예술’로 남게 될 뿐, 도덕과 공익에 투철한 사람을 뽑는 ‘좋은 정치의 예술’로 정착될 가능성은 없다. 이번 인사청문회가 “의도는 좋았지만 다소 부족한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보다 “이런 하나 마나 한 청문회는 왜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면, 그것은 참여정부의 또 하나의 위선적 태도와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6. 2. 1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