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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의 ‘삼성약속’을 지켜보자 - 박효종
	2006-02-08
무언의 ‘삼성약속’을 지켜보자 삼성그룹이 고 이윤형씨의 유산을 포함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 8000억원으로 기금을 조성, 사회에 환원키로 했다. 또 사회 일각의 비판적 여론을 의식, 구조조정본부 축소 등의 개혁을 다짐하기도 했다. 반가운 일이다. 건강한 사회의 희망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특히, 이 회장이 1300억원, 이재용 상무가 1100억원을 쾌척하기로 한 것은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사회에 기부하던 방식과 다르다. 한국에서 기업들이 사회에 환원한다고 할 때는 기업주 개인의 돈보다는 기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회사의 돈을 내놓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이런 관행을 과감히 깬 것이다. 이번 삼성의 사재 출연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도 나올 수 있다.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및 신문·방송 등이 줄기차게 전방위로 압박을 가한 결과, X파일 등 많은 문제로 궁지에 몰린 삼성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시각이다. 혹은 진정한 개혁이기보다는 국면 호도를 위한 수법이라며 한층 더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된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질타하지만, 잘못한 것을 고치겠다는 의지, 잘하겠다는 결단에 대해서는 이를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온당하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는 옛말처럼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것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채찍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삼성은 척박한 상황에서나마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절치부심했고 결국 세계가 주목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뿌듯한 생각이 들 경우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축구에서 유럽 강호를 상대로 이겼을 때이고 또 하나는 한국의 대기업이 세계적 신제품을 만들어냈을 때다. 성공한 대기업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해외여행을 해본 사람이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공감한다. 공항에서 숙소로 갈 때 삼성이나 현대, LG 등의 대형 광고판을 보면 어느새 반기업 정서는 사라지고 이국 땅에서 외롭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본 것과 같은 진한 감동을 받는다. 그 숱한 신화와 감동만들기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딱 2% 부족한 것이 있었다. ‘국민 속의 삼성’으로 자리잡는 데 미흡했던 것이다. 언제나 모든 것에서 남보다 앞서 가야 한다는 지나친 ‘일등주의 정신’이나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법과 규칙의 한계를 자주 시험하는 듯한 모습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삼성공화국’이라는 냉소적 말들이 회자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그 비판적 여론에 맞서보겠다는 고집보다는 이 모든 흠결들에 대해 마음속 깊이 반성하며 ‘새로운 삼성’으로 태어나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한 셈이다. 물론 사회 일각에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미진하다는 점을 들어 삼성의 사회환원을 과소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유구조에 대한 정답은 없다는 점이다. 한 기업의 소유 지배구조는 결국 그 사회와 문화, 역사 속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기업이라고 하여 사회적 책임을 경시하는 반사회적 기업이라고 비난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확고한 주인의식이나 후속 세대를 위한 책임감으로 지나친 사익 추구를 자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환경이나 교육에 관심이 없던 부모가 딸을 기르게 되면서 딸이 살게 될 세상을 생각하여 환경이나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또, 삼성이 사회의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고 한 이상, 실체도 불분명한 지배구조 논쟁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 한국이 세계적인 대기업이 만들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6. 2. 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