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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까 - 박효종
	2006-01-04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까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충동을 느낀다. 일상적 삶을 사는 보통 사람이라도 담배를 끊겠다거나 술을 조금만 마시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작심삼일’이라도 새해가 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만큼 기분이 들뜨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집단적 차원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어떤 결심을 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는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 양상을 보면 다양한 의견이 경쟁적으로 나타나는 건강한 다원주의 사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늑대와 늑대의 싸움’을 연상시키는 홉스적 자연 상태의 만인투쟁적 양상이 두드러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집단’과 ‘그들 집단’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 논란에서도 진보와 보수로 갈라진다. 세대·지역·노사 간 갈등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또 이념적 갈등 구조도 정말 심각하다면 갈등 피로감을 느낄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결심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줄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우리도 화해와 통합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화해’라고 하면 종교적 의미를 갖는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정치에도 ‘화해의 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야말로 20세기가 배출한 대표적인 ‘화해의 정치가’다. 그는 27년 세월을 영어의 몸으로 지낸 후 석방되면서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감동적인 말을 남겼다. 이로 말미암아 분열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해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손을 내밀 것”을 설파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여야 간의 가파른 대치정국이 장기간 지속되는 암울한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강행 통과에 항의하면서 장외투쟁에 골몰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은 ‘기회는 찬스’라는 듯 예산안을 비롯한 온갖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며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나온다. 현 정국을 보면 자신보다는 상대방이 손을 내밀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왜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것일까. 지금 여야는 영락없이 로마 시대의 검투 경기를 재연하고 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보듯, 상대방이 쓰러질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이 검투 경기의 특징이다. 여야가 현대판 검투사가 되어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판인데, 어떻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인가. ‘화해의 정치’를 위해서는 무엇인가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빈손을 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엊그제 이루어진 개각 인사가 화해와 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대치정국 해법의 실마리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너무나 정략적이며 자의적인 인사라는 인상을 지울 길 없다. 대통령은 인사권을 통하여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살릴 수 있고 은혜도 갚고 징발도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보은인사’나 ‘코드인사’를 통하여 자신의 주위를 맴돌거나 줄을 선 사람들의 정치적 야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도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감안한다면, 그런 식의 인사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인사권 행사라고 하기 어렵다. 국민 지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대통령이라면 화해와 통합의 시대정신에 각별히 유념하면서 엄숙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화해의 정치를 위해선 검투사처럼 상대방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 먼저 손을 내미는 ‘베풂의 손짓’이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이번 개각 인사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학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6. 1. 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