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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게 있는가 - 류동길
	2005-12-08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게 있는가 민주주의가 중요한가 경제발전이 중요한가. 어느 한 쪽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어떨까? 현재 우리 국민의 84.6%는 경제 발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조사기관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200명을 면접조사한 결과다.(문화일보 6일자 참조) 이는 경제는 바닥을 기고 있는데도 경제를 챙기지 않고 이런저런 일을 벌이면서 개혁이라고 포장하는 집권층에 대해 국민들이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셀 수 없을 만큼 경제를 챙기겠다는 다짐을 했다. “경제에 올인하라는 것은 선동정치의 표본”이라는 엇갈린 말도 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진국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선진국”이라는 발언이 대통령 비서실장에게서 나왔다. 경제 성장과 발전은 높은 산을 한발 한발 힘겹게 오르는 등반에 비유할 수 있다. 등반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아는 일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아는 일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산의 정상(頂上)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정상에 올랐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선진국이라고 우겨서 무엇하겠다는 것인가. 현 정권이 집권 이후 한 일을 보자. 성장이냐 분배냐를 두고 시비를 벌이고 과거사 정리, 국가보안법 폐지, 신문관계법과 사학법에 매달렸다.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 등에서 보듯 이미 시행중인 국책사업이 차질을 빚어 엄청난 예산을 낭비했다. 수도이전 계획이 무산되자 수도 분할을 획책하는 행정도시 건설에 발벗고 나서는가 하면 177개 공공기관을 이전하겠다고 했다. 일단 일을 벌여놓고 보자는 식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경제 살리기와 무관한 문제가 아닌가. 지난 2년 간 장·차관급 자리를 22개 늘리고 공무원도 2만3000명 늘렸다. 이러고도 경제가 활기를 띤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 정도 버티는 것은 집권세력이 부정하고 싶은, 앞선 세대가 이룩해 놓은 경제력 덕이다. 예산적자는 늘어나고 국가채무도 2002년의 133조원에서 2004년 203조원으로 늘어났다. 2005년에는 248조원, 2006년 280조원, 2007년에는 299조 원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내세운 대형 국책사업 규모도 이미 700조원을 훨씬 넘어섰다. 세금 낼 국민의 허리는 휘는데 빚내서 쓰는 일에 익숙해서인지 몇 십조 원은 아예 돈 같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한 푼이라도 성장동력 확충에 써야 한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5.0%로 전망했다. 다른 연구기관에 비해 낙관적이다. 낙관적 전망을 탓할 일은 아니나 2003년의 3.1%, 2004년 4.6%, 올해의 3.9% 등 수년간의 성장 부진을 감안하면 미흡한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고 그것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5~6% 이상 성장할 수 있는데도 비틀거린다면 경제를 챙기지 않았다는 것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를 보라. 한편에서 보일러 틀고 다른 쪽에서는 에어컨 트는 형국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성장률보다 성장잠재력 제고에 있다. 2001~2005년 설비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1% 수준에 불과하다. 성장잠재력이 멈췄다는 이야기다. 한국산업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35%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10년, 20년 후 우리가 무엇을 먹고살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진다. 세계 각국은 월드컵 축구 경기처럼 하나의 시장에서 경제전쟁을 치른다. 한국경제, 살아남을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지난 1992년 미국 대선 때 클린턴이 당시 대통령 조지 부시의 연임을 저지한 말은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였다. 우리 국민이 하고픈 말이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과제는 없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12. 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