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국민과 헌법을 섬기는 사법부 - 강경근
	2005-12-07
국민과 헌법을 섬기는 사법부 제14대 대법원장의 임기를 시작한 이용훈 대법원장이 그 출범의 닻을 올리고 항해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귀한 보물을 보듯이 그 전도를 살피고 있다. 정치 질서의 수장인 대통령과 국회의 눈으로는 법치 질서의 최고 사령탑인 대법원이 ‘가장 덜 위험스러운’ 기관으로 보이겠지만, 법치국가 원칙이 점차 보편화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가장 강한 기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신임 대법원장이 이미 인사청문회를 전후해서 전임 대법원장과는 달리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라 하여 좀 더 시민들의 마음에 한걸음 다가서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 온 것은, 그의 판결 성향으로 볼 때에는 충분히 예견되는 부분이었다. 당해 사건의 실체적 정당성에 비추어 권익 구제가 요구되는 경우에는 기계적인 법률 적용에서 탈피하여 헌법의 기본권적 가치에 따르는 자리에 서곤 했기 때문이다. 추상적 논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건 당사자들을 섬기는 판결을 보여주곤 했던 그의 재판관의 자세는 실제 법이론적으로도 신선한 관점을 지닌 판결이 적지 아니하여 학자들의 판례 평석의 좋은 소재가 되곤 했다. 그래서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라는 표현을 썼을 때 사실 개인적으로는, 기왕이면 ‘헌법’을 섬기는 사법부라는 측면도 함께 고려하여 사법개혁의 ‘반보(半步)’ 정도만 나아가는 것이 현실에 발을 딛고 서야 하는 법률가의 의미 있는 진보의 행보가 아니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일 대법원에서 열린 첫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대법원장이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를 핵심 명제로 설정하면서, “사법부 구성원들이 자신의 처지와 신분 향상에만 관심이 있을 뿐 국민을 위한 사법부 변신과 관련한 처방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 발언에는 울림이 있었다. 재조(在曹)의 경험만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지적이었다. 민원 서비스 강화, 법정 운영 방식 개선, 인사제도 개선, 정보화 통한 서비스 강화 등을 핵심으로 하는 개혁안의 진정성에 의심을 품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려일실(千慮一失)의 입장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연공서열식이 아닌, 능력 위주의 인사를 위하여 종래 법관 인사의 기준이 됐던 근무평정을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적용되게 하는 것은 옳다. ‘연수원 성적 꼬리표’가 평생을 좌우하는 것의 폐해는 이미 보아온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판단 기준에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등의 객관적 안이 미리 나와 일반 법관들의 공감을 받을 때, 새로운 줄서기로 인한 사법의 독립성은 유지될 것이다. 또한 배심제·참심제와 구분되는, 일반인도 ‘심리위원’으로 재판 절차에 참여하도록 하는 안이 현재 시행되고 있는 특허 심리에서의 전문가 참여와 유사한 것이라면, 이를 일반 사건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채택하는 경우에는 헌법과 법률에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이라는 헌법 원칙에 반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의 사법 참여는 가능한 한 사법 감시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사법 자체에 대한 과잉 접근성은 자칫 이번 황 교수 연구에 대한 한 방송사의 무리수에서 보듯이, 평판화(平板化)된 민주주의로 인하여 사회 각 분야의 고유성과 전문성을 해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사람의 정신 종교 가족 학문 예술 언론 학교 공무원 군 사법 등등의 영역에는 민주주의 원리의 획일적 적용이 아니어도 좋은, 또 그래서는 아니될 고유한 영역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야 사회의 다양성을 실현하는 민주주의의 법 정신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 역시 그러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런 영역이 보장될 때, 사법은 국민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진정 국민과 헌법을 섬기는 자리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5. 12. 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