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망령(亡靈)을 불러내는 한국정치 - 김일영
	2005-11-17
망령(亡靈)을 불러내는 한국정치 DJ·YS·JP에 의지해서 지역정서 덕 보려는 정치판 "무능하면서 표 계산은 빨라" 3김 없는 3김 정치'가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계를 떠난 3김이 언론에 등장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국민에게 드는 생각이다.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가 충청권 신당 관계자들과 회동해 자민련과 신당 통합에 힘을 실어 줬다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안부전화를 하면서 민주대연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화제의 중심은 단연 DJ다. 국정원 도청 파문이 터지고 그 여파가 DJ정권까지 미칠 무렵 그는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영향력이 엄연히 살아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병문안이 줄을 이었고, 언론은 이를 '병실 정치'라고 표현했다. 최근 그 2막으로 '응접실 정치'가 나타나고 있다. 도청사건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돼 가는 시점에 DJ의 응접실이 갑자기 붐비고 있다. 재.보선에서 참패해 의기소침해 있는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DJ는 "여러분이 나의 정치적 계승자"라는 발언을 해 열린우리당을 고무시켰다. 이 무렵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날 DJ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화합과 포용의 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같은 날 DJ의 공보비서는 "무도한 일"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비판했다. 이들이 구속된 다음날인 16일에는 DJ와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만남이 예정돼 있고, 여기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모두 주시하고 있다. 이 대화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장래, 더 나아가 한국의 정치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한국 정치의 중심무대가 DJ의 응접실로 옮겨 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이라고 해서 정치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은퇴한 이상 가급적 자제하는 게 옳고, 설사 하더라도 그 내용은 초당파적이거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봉사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습, 소외된 곳을 찾아 어루만져 주는 모습, 지역 간 골을 좁히기 위해 애쓰는 모습, 국민이 보고 싶은 전임 대통령의 모습은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최근 나타난 3김의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의 행위는 여전히 정치적이며, 그것도 당파성과 지역성을 탈각하지 못한 구태의연한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국민은 묻고 싶다. 오랜 기간 지역주의에 기대 정치한 3김이 은퇴 이후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더 한심한 것은 전임자들에게 정치적 활동 공간을 제공하는 현 정치권의 무능함이다. DJ의 "정치적 계승자" 발언이 나오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서로 적자라고 우기는 추태를 보였다. 정치의 주된 전장(戰場)은 미래를 바라보는 정책이어야 하는데, 두 당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전장 삼아 누가 DJ를 계승하느냐를 가지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JP의 계승자가 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자민련과 충청권 신당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은 계승자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DJ와 JP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조심하는 형색이 뚜렷하다. 이들이 계승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전임자의 이념이나 정책일까? 그런 점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DJ와 JP가 대변하고 있는 지역정서가 아닐까? 이것을 물려받아야만 다가올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각 당은 두 전임자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흘러간 정치인을 정치판으로 다시 불러들인 것은 무능하면서 표 계산에만 밝은 현재의 정치권이다. 3김은 정계를 떠났다는 점에서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망령(亡靈)이다. 이런 망령이 지배해서는 한국 정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아울러 정치권도 망령에 기대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정녕 망령(亡靈)을 불러내는 망령(妄靈)이 될 것이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중앙일보 2005. 11. 1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