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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대 정신' 판결 왜 늦어지나 - 제성호
	2005-11-01
'만경대 정신' 판결 왜 늦어지나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란 글이 지난 7월말 한 인터넷 언론에 게재된 후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맥아더 동상 철거를 둘러싼 좌우 진영 간의 몸싸움, 강정구 교수 불구속을 지시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 지휘권 행사를 ‘사실상 거부’(형식적으론 수용)한 검찰총장의 사퇴, 검찰의 정치적 독립 침해 논란, 그리고 국가정체성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강정구사태에서 드러난 이념적 혼돈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책임의 일단은 분명 법원에 있다.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실정법으로 존재하는데도 2001년 10월 시작된 ‘만경대 방명록 사건’ 재판을 신속하게 종결해야 할 직무를 방기해, 결과적으로 국보법 무력화와 강정구사태 키우기에 법원이 소극적으로나마 방조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만경대 방명록 재판이란 2001년 8월 평양에서 열린 통일대축전 기간중 강정구 교수가 김일성 생가를 방문해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겼는데, 이것이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에 해당되는가 하는 사법적 심판을 말한다. 법원은 지금까지 4년이 넘도록 1심 판결조차 내지 않고 있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다. 법 개폐 논의 등 정치권의 동향 고려나 재판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 등…. 그러는 사이 국가안보, 체제안보를 위협하는 병균은 독버섯처럼 번져 나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조만간 검찰은 강정구 교수를 국보법 제7조의 반국가단체 활동 동조·선전, 이적표현물 제작·반포 등의 죄목으로 기소할 태세다. 그러면 해당 재판부는 만경대 방명록 재판과 이번 사건을 병합심리할 것으로 보인다. 강정구 사건의 열쇠는 6·25는 통일전쟁, 미국은 원수, 맥아더는 전쟁광,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역사적 필연 등 ‘개별적인’ 친북좌파적·반미적 발언에 있는 게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만경대 정신’과 ‘현재진행형의 실천’에 있다. 즉, 지난 4년간 대한민국 안에서 강정구 교수가 행한 각종의 언행·강연·기고 등은 ‘만경대 정신에 따라 통일위업을 이룩하기 위한 의도적·조직적인 행동’이었는지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올바른 접근자세라 하겠다. 그러면 ‘만경대 정신’과 ‘통일위업’은 무엇을 말하는가. ‘만경대 정신’은 가치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만경대는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그의 사상을 잉태하게 만든 정신적·이념적 요람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의 주장과 같이 순수한 민족정신이 아니다. 북한측 설명에 따르면, ‘만경대 정신’은 세 가지로 집약된다. 항일빨치산 정신, 사회주의 건설의 정신, 조국통일(남조선 혁명)의 정신이 그것이다. 결국, ‘만경대 정신에 따른 통일위업’이란 빨치산적 기질을 가지고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의 기치 아래 남조선 혁명을 실현한 후 종국적으로 연방제에 의한 공산화 통일과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을 이룩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경대 방명록 기재를 통한 통일 노력 다짐이 그간의 문건과 언동으로 구체화됐는지, 강 교수의 행태가 대한민국의 국기(國基)인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또 자유의 보호막 속에서 이를 남용해 자유민주체제를 공격하는 것이 우리 헌법체계 내에서 허용되는지 등이 법적 잣대에 의해 엄정하게 평가돼야 할 것이다. 작금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여기서 묻고 싶다. 21세기 시대정신은 ‘만경대 정신’을 인정·수용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가운데 인권의 보편적 가치성을 북한에 전파하는 것인가? 우리 사회와 법원은 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11.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