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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 넘어 '한국 문명'이 열린다 - 김진현
	2005-10-31
'근대화' 넘어 '한국 문명'이 열린다 대한민국은 지금 위대한 기회와 절명한 위기의 갈림길에 있다. 세기적 희망과 세기적 절망의 교차점에 있다. 한편에서는 5000년 한국 통사(通史)에서 있어 본 적이 없는 ‘한국 문명’의 시대를 열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가 있다. 그러나 제2의 한말(韓末)과 같은, 또는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19세기 말보다 더 힘든 주변 국제관계의 관리에 따라서는 남북한 모두의 붕괴 가능성까지 엿보인다. 대한민국은 1945년 이후 독립한 140개 가까운 후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공화국이다. 프리덤하우스의 정치 자유화 지수에 의하면 한국은 최(最)선진권에 속한다. 1945년 이후 독립국 중 1인당 소득 1만달러를 넘긴 나라는 5개쯤 되지만 인구·산업구조·정치사회구조로 보면 다른 나라들은 우리와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다. NGO와 종교의 수용 등 사회적 다원성에서도 단연 세계 최선진에 속한다. 가히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게다가 황우석 교수로 상징되는 생물의료과학(BT)의 세계적 선도는 반도체·통신의 IT 선진화와 더불어 단군 이래 처음으로 ‘한국 문명’ 창조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한국은 5000년 역사에서 문학·과학·예술·철학에서 독특한 창조의 능력을 보였다. 독보적 발명도 많다. 그러나 그 모두가 한반도와 그 주변에 머물렀을 뿐이다. 중국문명,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인도의 불교문명, 아랍문명, 영국의 시민·산업혁명, 미국의 대중민주주의혁명같이 전 세계 인류에 영향을 미친 문명 또는 문명권을 창조·형성한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얼마 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메디 심포지엄’은 대한민국 땅에서 열린 생명과학의료기술혁명의 세계적 심포니 연주였다. 감격 그대로였다. 황우석 교수와 섀튼·윌멋 박사 등 노벨상 수상 후보들이 한자리에 모여 펼치는 강연·담화·몸짓은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영광된 것인지를 실감케 했다.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성과로 21세기 산업혁명이 한국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대가들의 진단은 한민족 역사 이래 처음으로 세계를 향한 ‘한국 문명’ 창조의 빛을 느끼게 한다. 다만 큰 장애가 남아 있다. 연구 자체보다 연구에 대한 두 가지 방해, 과학자 내부의 질투와 대중의 이해 부족이다. 섀튼 교수는 100년 전 백신 발명 때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반대가 있었지만 인류 복지에 결정적 공헌을 했고, 30년 전 장기이식 수술도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기독교·이슬람·유태교·아시아가 모두 수용, 일반화되었음을 상기시켰다.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도 처음 미국 필라델피아에 설치했을 때 소들이 밤잠을 못 잔다고 반대하여 철수한 적이 있었다. 복제기술에 대한 우려와 오해도 생명과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극복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 특히 한국과학기술인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그날 안규리 박사는 19세기 고증학의 대가 추사 김정희의 한시(漢詩)를 전했다. “학술은 수백 년이 지나면 반드시 변합니다. 학술이 변하고자 할 때에 한두 사람의 선구자가 있어서 단초를 열게 되면 수백 수천 사람이 이를 요란하게 비판합니다. 그것이 이미 변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한두 사람이 성과를 모으게 되매, 이에 수백 수천 사람들이 휩쓸려 이를 쫓게 됩니다.” ‘한국 문명’이 창조될 수 있느냐, 아니면 절망의 길로 가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내부의 신뢰에 달렸다. 능력이 아니라 서로의 올바른 이해와 진실에 대한 외경, 그리고 진실추구 노력에 달린 것이다. 金鎭炫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전 과학기술처 장관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5. 10. 3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