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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사표는 반려됐어야 - 강경근
2005-10-17
검찰총장 사표는 반려됐어야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검찰청법 제8조에 따라 강정구 교수 발언 같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김종빈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였다. 문면상으로는 법에 따른 행위라서, 정부도 이를 불법도 아니고 위법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조항을 반대로 독해한 것에 불과하다. 법무부장관이 범죄수사·공소제기권에 개입하는 일은 검찰청법 정신에 상충된다. 검사가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지켜야 하는 정치적 중립을 해칠 수 있는 개연성이 큰 것이다. 검찰권의 핵심은 개개 사건에 대한 검사의 기소권과 수사권의 보장에 있다. 이를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의하여 보장하려는 것이 그 조항의 뜻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정한 헌법 제103조에 필적하게 검찰권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조항이 검찰청법 제8조다. 일선 검사들이 이번 지휘권을 두고 “적절치 않다”고 한 것을 집단이기주의적 시각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김 검찰총장이 천 장관의 지휘를 수용한 뒤 사퇴서를 제출한 것 역시 지휘권 행사의 정치적 불법성을 지적한 항변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검찰 조직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 셈”이 된 김 검찰총장의 사표 제출은 검찰권 중립을 위해서는 가장 악수를 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검찰 입장에선 총장의 퇴진이야말로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 부당한 조치였음을 국민에게 알리는 최고의 수단 아니겠느냐고 평가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이는 유아적 사고다. 천 장관도 동반사퇴하지 않으면 일선 검사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도 역시 그러하다. 김 총장은 그 자리를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려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이번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이미 강 교수 사건은 국가보안법이나 구속의 문제에 그치는 사안 이상의 대한민국 국기(國基)의 문제가 된 것이다. 진보를 빙자한 대한민국의 정체성 훼손 세력에 대한 헌법수호자로서의 국민을 복권시켜야 할 더 큰 의무가 있음을 검찰은 잊은 것이다. 검찰은 어느 것이 나라를 지키는 원칙에 충실한가를 판단의 기초로 삼았어야 했다. 여론은 문제 있는 사람의 인권을 빌미로 법무부장관이 검찰지휘권을 헌정 이래 초유로 행사했다고 한다. 천 장관은 “지휘권 발동의 핵심은 ‘불구속’ 수사”이지 “국가보안법이나 강 교수 혐의에 대해 판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구속수사 대신 불구속수사를 하도록 지시한 것이고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은 그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강 교수 발언의 대한민국에의 반역적 성격에 우려와 분개를 표하고 있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저것이 교수 개인이 아니라 정부의 원조를 받고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에 대해서 우리나라를 수호하는 국민이 한판 대결을 벌여서라도 해결지어야 할 결전의 정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자각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의 경쟁에는 눈감은 국민이라도 반역과 애국의 싸움에는 다시 모이는 것이 이 나라의 민초들인 것이다. 이번 기회에 장관의 지휘권을 규정한 검찰청법 제8조를 검찰권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원칙과 예외를 명확히 하는 개정을 추진하여야 한다. 그래야 이번 사건이 선례가 돼 앞으로 장관이 수사 지휘권을 남발할 소지를 미연에 막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라도 김 검찰총장의 사표는 반려돼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시장경제질서를 지키고자 광야에서 떨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이 국가의 혼(魂)을 지킬 수 있도록 나라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에 남은 힘을 쏟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한, 천 장관 역시 법무부장관의 소임을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될 것이다. 강 교수 개인의 사건을 정부 전체의 일로 확전시켰다는 점에서 자신이 만든 사태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장관도 살고 검찰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5. 10. 17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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