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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대 정원감축 설득력 없다 - 조동근
	2002-08-12
의대 정원감축 설득력 없다 대통령직속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는 내년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올해보다 10% 감축하기로 했다. 발전특위의 입장은 2002년 3월 현재 인구 10만명당 130명인 의사 수가 2005년에는 200명에 이르러 ‘공급과잉에 따른 의료의 질 저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 예상되는 만큼 의사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전특위의 이 ‘감축안’ 의결에 대해 교육부는 “감축 원칙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당장 내년부터 일괄적으로 감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 감축은 2000년 의료분쟁 때 의료발전대책의 일환으로 이미 발표된 바 있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므로, 의료 소비자의 관점에서 의료인력감축 논거가 과연 타당한지를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가 의사 공급과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적합한 지표인가? 우리나라 의료비 증가 추이를 보자. 지난 98년에 9조9000억원이던 의료비가 99년에는 11조7000억원, 2000년에는 13조원을 넘어서는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의료비를 국민총생산(GNP)에 대비시킬 때 우리나라는 6%로, 미국의 14% 독일과 스위스 등의 1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는 향후 소득증가에 따라 의료시장이 그만큼 커질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즉 의료산업은 ‘성장산업’인 것이다. 의료시장의 잠재적 수요기반 확대를 고려하지 않고 인구 10만명당 의사 몇명 식의 지표로 공급과잉을 단순 갈음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또한 의료인력 감축은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설명된다. 그러나 과당경쟁은 특정산업 내의 신규진입을 저지하려는 기득권자(incumbent)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제논리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경쟁제한적’이다. 경쟁제한 조치가 잠재적 진입자인 의대지망생과 의료소비자에게 이득이 될리 만무하다. 그리고 의료인력이 감축돼야 의료의 질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의사들간의 경쟁압력이 높을수록 환자의 니즈가 효과적으로 충족돼 의료 질이 제고된다. 더욱이 의료인 간의 경쟁 제한은 의료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예컨대 마라톤 기록이 점차 경신되는 것은 마라톤을 여럿이 같이 뛰기 때문이다. 경쟁자 없이 혼자 뛰는 마라톤으로는 절대 좋은 기록을 낼 수가 없다. 의사 면허제도의 취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격을 가진 자에게만 의료행위를 허용함으로써 의료서비스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면허제도가 ‘의사의 희소성’을 조절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데 있다. 의대정원 감축은 의사고시 합격률을 낮출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한 의사 수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의사는 새로운 진단과 치료법의 개발을 통해 의료행위의 신규수요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여타 전문가집단과 달리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가 반감된다. 한편 의료서비스는 가격탄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의료가격이 인상되더라도 의료서비스 수요가 별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의대 정원 축소를 통한 의사 수의 통제는 장기적으로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높여 의사의 소득을 높이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다소 논란은 있지만, 지금도 의료인의 평균보수는 어느 전문집단보다 높다. 지방 보건소가 상당한 급여로도 공중보건의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의료서비스는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인술(仁術)로 여겨져 그동안 성역시된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고급 전문서비스이기 때문에 의료문제는 기본적으로 경제문제이다. 의료소비자 입장에서 의대정원 감축안은 진입장벽을 쌓아 의사 공급을 제한, 자신들의 집단이익을 보호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의사 수가 통제되면 의료소비자는 의료서비스의 ‘질과 가격 그리고 접근성’ 면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의료시장은 의사와 환자간의 교섭력에 불균형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판매자 시장’이다. 따라서 의료정책의 중심은 의료소비자 쪽에 놓여야 한다. 의료소비자가 환자가 아닌 고객(client)으로 인식되고 의료행위에 대한 정보 비대칭이 완화될 때 비로소 의료관행의 선진화가 가능해진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 / 시민회의 경제연구센터 소장) 출처 - 문화일보 2002. 8. 1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