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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경영모델 강요말아야 - 박성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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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12 | |
| 미국식 경영모델 강요말아야 최근 들어 유로화 가치가 달러화와 동등한 수준에 오락가락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가 미국 증시에 대한 신빙도가 급속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작년말 엔론사에서 시작되어 글로벌 클로싱, 월드컴, K마트, NIL사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파산은 월가 주가 및 전세계 주가를 폭락시키고 있다. 유럽 각국은 미국 증시의 충격이 유럽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파산은 회계부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엔로니티스(Enronitis)라 불리는 이 새로운 병리현상으로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과 미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은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방식(Shareholder Value 원칙)이다. 이 개념의 창시자인 앨프리드 레파포트(Alfred Rappaport)는 그의 명저 ‘크리에이팅 셰어홀더 밸류(Creating Shareholder Value·주주이익창출·1986)’에서 “주주 이익을 보호하고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며, 단기적 주가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간(10~20년)에 걸쳐 주주 이익과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투자회사의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회사의 지배구조와 회계제도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투명하게 설계돼 있다. 그러나 이 모델이 실제 운용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우선 경영자들은 신기술 개발, 제품, 고객, 기업의 장기 가치보다는 월가의 주가 변동에 충실한다. 장기적인 수익과 경쟁력 강화보다는 단기 실적 위주 경영으로 주가만 올리면 자리가 보전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스톡옵션이라는 마력적인 계약이 뒤따른다. 자신의 재임 기간에 주가를 최대한 올리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기 때문에 회계 규정의 허점을 악용한 ‘실적 부풀리기’도 서슴지 않는다. 경영자의 독단을 방지하고 회계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외이사와 감사 제도를 도입했지만, 사외이사(감사 포함)의 대부분을 경영자가 지명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 회계감사 법인, 증시 애널리스트 등 월가 당사자들도 미국식 경영 모델의 허점에 기여하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회계감사 법인이 컨설팅을 겸하고 있다. 감사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고객(클라이언트)이기 때문에 기업들과 담합을 통한 회계 조작은 충분히 예견되는 것이다. 월드컴의 회계감사에서 400만달러를 받은 아서 앤더슨사는 자문상담 보수로 1500만달러를 받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낙관적 전망을 고수하고 ‘나쁜 소식(bad news) 전하기’를 기피했다.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것보다 긍정적 전망을 통한 호순환이 그들의 비즈니스에도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회계부정 방지 및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재정비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독일 BDI(한국의 전경련과 비슷함)는 지난 8일 연방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 법적·제도적 감사제도 도입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하면서 ‘기업 자체 지배구조 기준’을 발표했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까지 독일 기업은 회계부정에서는 미국과 달리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기업 지배구조에 있어서는 기업 스스로가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외환 위기 이후 우리 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로서 미국식 경영 모델을 급속하게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진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장기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한국 경제에 초단기 실적주의는 적절하지 않다. 매년 주주총회에서 주주들로부터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야 하는 전문 경영인들이 과연 기업의 미래 가치를 극대화하는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가 가능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금융·서비스 등 3차 산업이 중심인 미국 경제와 2차 산업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식 경영의 수용 여부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실용성을 감안한 ‘선택의 문제’이다. 선택과 집중, 과감하고도 신속한 의사 결정, 세계시장 MS 중시 등이 한국 기업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정부는 기업에 더 이상 미국식 경영 모델을 강요하지 말고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부채 비율, 기업 지배 구조 등은 기업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박성조 (베를린 자유대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문화일보 2002. 8. 10 포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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