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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 公明正大해야 살아남는다 - 홍진표
	2005-08-02
시민단체, 公明正大해야 살아남는다 X파일이 열리면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시민단체들의 행보도 쉽지가 않다. 그 와중에 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삼성 관계자, 홍석현 대사, 이회창씨 등 한나라당 정치인, 검찰 고위간부 등 20여명을 뇌물수수죄 등으로 고발하는 무척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 참여연대는 불법 도청을 비판하면서도 도청을 하고 불법 테이프를 유통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피고발인의 명단에 올리지 않아 정경유착 쪽에 무게를 두는 선택을 했다. ‘바로 정경유착이 핵심이야’라고 여론을 끌어가려던 참여연대의 시도는, 검찰이 미림팀장이던 공운영씨의 집에서 무려 274개나 되는 도청 테이프를 압수하면서, 고차방정식 같은 복잡한 사건을 인위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려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MBC의 보도만을 근거로 참여연대가 사건의 성격을 단정하고 단죄할 명부까지 작성했다는 점도 지나친 성급함으로 다가온다. 공개된 도청 내용은 과연 실행이 됐는지 검증 과정이 없이 오간 대화만으로는 전모를 확인하기 어렵다. 역시 말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의 이런 단정적 태도는 결국 실수도 낳았다. 기아자동차와 관련된 부분은 이회창 후보가 아닌 김대중 후보를 지칭한 발언임이 확인됐고, MBC도 뒤늦게 오보를 시인했다. 그런데 참여연대는 이와 관련, 이회창 후보를 고발하는 실수를 했다. 이 착오가 알려진 뒤에도 참여연대는 애초 고발장에서 김대중 후보도 수사 대상에 올려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수사 촉구와 고발장에 이름을 적시하는 것은 그 차이가 크다. 그렇다면 착오로 밝혀진 이후에는 고발장을 수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참여연대가 분명한 입장을 정하고 행동에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단지 추측만 가능하다. 우선, 이슈 선점의 유혹이 있을 수 있다. 언론을 통해 그 활동이 널리 알려지는 시민단체는 이른바 보도 가치가 있는 내용을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분명하고 무슨 행동이 동반되면 더 좋다는 요구가 있다. ‘아직 잘 모르겠다’ ‘좀더 지켜보자’ ‘불법 도청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모두 문제다’ 이런 싱거운 대응은 언론의 보도 의욕을 결코 자극하지 못한다. 현실성이 없는 대안이라도 무언가 주장해야만 한다. 한편 참여연대는 그동안 삼성 비판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삼성이 가장 문제 많은 기업이라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1등을 공격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전술적 판단인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거의 안티삼성이 브랜드가 될 정도로 큰 비중을 두어 왔다. 참여연대는 최근 모 방송사의 삼성을 해부하는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도 관여했다. 물론 참여연대의 선도적 문제 제기는 기업의 투명성 강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런 삼성과의 악연(?)이 참여연대가 이번 사건의 해법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마치 경쟁관계에 있는 정당들이 상대를 공격할 약간의 소재만 있어도 자판기에서 물건 나오듯이 미리 정해진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한국 사회의 편 가르기 풍조가 심해지면서, 공명정대(公明正大)를 생명으로 삼아야 할 시민단체들도 때로는 누구에게는 가혹하고, 누구에게는 관대한 정파적 처신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여 왔다. 또한, 가장 앞서서 세상을 향해 무언가 정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자기 과신도 발견된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 속에서 ‘사(私)’가 끼지 않는 세력으로 기대 받는 시민단체가 자기 성찰에 게으를 때 그나마 유권자의 표라는 가장 강력한 견제 장치를 갖고 있는 정치권보다도 못한 대중 영합 집단이 될 수도 있다. 필자도 시민단체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 누워서 침을 뱉어본다. 홍진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 출처 - 문화일보 2005. 8.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