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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국정원'으로 거듭나야 - 제성호
	2005-08-02
'국민의 국정원'으로 거듭나야 안기부 X파일 파문으로 국정원이 지금 패닉 상태에 있다고 한다. 과거 불법 도청을 지휘했던 미림팀장이 사리사욕을 위해 몰래 유출시킨 도청 테이프가 국정원의 위상과 이미지를 무참하게 실추시켰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X파일 유출 사건은 오래전에 잉태된 것이었다. 권력자의 구미에 맞는 정보 생산의 관성, 도청에 대한 위법성 인식 부족, 일부 해바라기성 인사들에 의한 국정원의 정치화, 지연.학연 등 비합리적 요인에 의한 인사, 정권 교체 직후 단행된 대량 해직, 비밀관리체계의 허술, 퇴직한 직원의 사후관리 미비 등 정보기관이 안고 있던 내부 모순과 부조리가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그간 국정원은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조직개편, 공보관 제도 운영 및 홈페이지 개설 등 대민 의사소통, 과거사 진실 규명 등 변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번 파문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여러 시도와 성과가 수포로 돌아갈까 우려된다. 정보기관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번의 호재(?)를 활용해 국정원 해체의 목소리를 높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단견이다. 국정원은 불법 도청과 국민 감시만 해온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정원이 조용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 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국익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최첨단 산업기밀 유출을 저지하거나 기업인으로 위장해 국내에서 첩보 수집 활동을 한 외국 정보원을 적발, 추방한 일은 그 대표적인 예다. 외교적 고려나 방첩활동의 은밀성 때문에 모두 다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다. 최근에는 대테러 활동을 통해 국민의 안전 확보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보기관의 폐해와 역기능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세계 모든 나라가 정보기관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정보전쟁에서 패할 경우 국익 수호 및 국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정원 죽이기에 나설 게 아니라 '바로 세우기'를 모색해야 한다. 첫째,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정부 조직 편제상 대통령 직속기관인 관계로 그동안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국민 감시와 정치권의 비정상적 수요 충족 대신에 다양한 정보서비스 제공을 통해 국민에게 다가가는, 진정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테러 방지 활동과 같은 '인간 안보' 기능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최고의 정보기관', 국익 지킴이의 첨병이 돼야 한다. 오늘날 국가 간의 경쟁은 외형상으론 경제전과 정치전이지만, 요체는 정보 획득 싸움이다. 여기서 질 경우 그 파급효과는 전 국민에게 미친다. 해외정보 수집, 산업 보안, 외사(外事)방첩 기능은 그래서 중요하다. 범세계적 정보전에서 승리하는 일류 전사들만이 국가 정보의 기획.조정 등 중추적 역할을 할 자격이 있다. 셋째, '통일 지향적 정보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춰야 한다. 우리가 처한 분단 현실에서 북한 관련 정보는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와 평화적 통일에 필수적이다. 올바른 통일 지향은 튼튼한 체제안보 태세의 확립과 화해.협력의 실천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2004년도 대공수사 예산은 전년도에 비해 무려 150억원이 삭감됐다고 한다. 이러고도 간첩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남 공작원 체포에는 무기력하면서, 불법 도청이나 대북 비밀송금에 관여한다면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국정원은 지금이 중대한 위기이자 환골탈태의 기회다. 정확한 원인 분석에서 수습책이 나온다. 뼈를 깎는 참회와 진정한 개혁을 통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중앙일보 2005. 8. 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