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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파일'이 주는 교훈 - 정진영
	2005-07-29
'X파일'이 주는 교훈 이른바 안기부 X파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각종 언론이 이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정치권에서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왜 이러는지 알 듯하지만 쉽게 수긍은 가지 않는다. 이번에 공개된 도청 문건의 주요 내용은 이미 거의 알려진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검찰 간부들을 관리해 왔다는 사실이나 기아차 인수에 관심을 갖고 노력했다는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YS정부 시절에 도청이 이루어진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DJ정부 시절에도 과학보안국이라는 감청전문부서를 운영했고, 휴대전화 감청을 둘러싼 논란은 현 정부 하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X파일 사건은 두 측면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X파일의 내용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청과 도청 테이프의 유출과 관련된 것이다. 국민 다수의 정서상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참여연대는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등장인물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국민의 알권리가 도청과 유출의 불법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크게 두 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불법 도청으로 이루어진 대화내용을 가지고 당사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불법이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알권리’ 못지않게 ‘사생활의 자유와 통신비밀’도 똑같이 중요한 기본권으로 보호하고 있다. 둘째, 이른바 미림팀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도청 테이프만도 8000개 이상이라고 하는데, 그 중 공개된 하나를 갖고 관련된 당사자들을 처벌하려 한다면 편파성 시비를 벗어날 수 없다. 도청된 내용을 갖고 처벌을 하려면 모든 테이프를 공개하고 당사자들의 위법성 여부를 가려야 한다. 각종 언론매체들과 참여연대는 이번에 공개된 하나의 테이프마저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조작된 것으로 금방 드러난 보고용 문건만 가지고 사건의 성격을 단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도청과 도청 테이프의 유출 그 자체는 도청의 내용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한 걸음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이 문제가 오히려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도청 자체가 절대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휴대전화 도청 등의 논란은 이번 기회에 말끔히 해소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원의 도청실태, 나아가 국내정치 사찰에 대한 믿을 만한 검증과 감시가 불가피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기 보호를 위해 도청 테이프 등을 개인적으로 은밀히 보관해야 하는 풍토도 없어져야 마땅하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국정원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고, 내부의 운영이 정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해야 한다면 개인들은 자기 보호를 위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국정원은 더 이상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도구가 아니라 국익 추구에 필요한 정보활동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불법 도청물을 이용한 협박에 정부 당국자가 타협으로 대처하면 불법 도청이나 유출을 막을 길이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정권교체가 수시로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국가권력을 장악했다고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 국정원이나 검찰, 경찰과 같은 권력의 수단들을 집권세력의 권력 연장이라는 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면 X파일 사건은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정경유착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생존이나 성장을 위해서, 이권을 획득하거나 보험용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업이 정치권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생존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이번 X파일 사건이 주는 교훈이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5. 7. 2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