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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분리돼야 서로가 산다- 정진영
2005-06-07
당·정 분리돼야 서로가 산다 재보선 참패 이후 위기에 빠진 여당에서 당정분리 원칙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선거에 참패하고 위기에 빠진 이유가 당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의 계속되는 비리사건 연루와 정책실패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여당과 청와대가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고 인식할 때, 이러한 주장은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청와대와 정부가 잘못하면 여당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선거에서 패배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청와대도 마찬가지 논리로 제기할 수 있다. 선거패배와 같은 당의 잘못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에서 복귀하고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를 재정립할 때, 대통령은 여당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강력히 표출했다. 자신은 여당을 지배할 생각이 없으니 당도 청와대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고 말했다. 더욱이 자신이 당의 공천에 간여하지도 않았는데, 당의 선거패배가 마치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인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다고 했다. 당정분리 원칙의 재고를 요구하는 여당이 이를 통하여 기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청와대 참모들의 인적 쇄신과 정책 결정과정에 대한 당의 역할 강화다. 비리사건이나 정책실패에 따른 책임을 당이 질 수밖에 없다면, 이와 관련된 권한을 당도 어느 정도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둘째, 여당 조직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 대통령이 보다 직접적으로 당에 관여해 달라는 주문이다. 여당은 반복되는 리더십 위기를 겪어오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당 지도부 사이의 관계가 대폭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 대통령의 당정분리 원칙에 대한 신념은 이를 통하여 제왕적 대통령 현상을 차단할 수 있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서 국회를 지배해 왔던 과거의 관행을 깨트려야 한다고 그는 누차 강조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결말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모를 리 없는 대통령으로서는 정당정치를 초월해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싶을 것이다. 이는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당정분리의 원칙을 실현하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다. 우선 국민 대다수가 정치를 정당정치의 틀로, 여야의 대립구도로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을 같은 운명체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직을 맡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여당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 출자총액제한, 아파트 원가공개 등 굵직굵직한 사안마다 여당의 입장이 대통령의 말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를 갖고 있지만, 내각제적 요소가 많이 가미돼 있는 것도 당정분리를 어렵게 한다. 여당 의원들이 장관직을 맡고 있고, 정책조율을 위한 당정협의가 수시로 열린다. 당정분리 원칙의 재고를 요구하는 여당의 주장은 이러한 현실적 요소들을 고려한 것임에 틀림없다. 어차피 공동운명체인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성공을 위해서는 당과 정부가 효과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한국정치의 발전방향에 역행하는 것이며,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멸의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많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성공, 나아가 대한민국의 성공을 위한 길은 오히려 당정분리의 원칙을 더욱 철저히 실현하는 데 있다. 삼권분립의 원리에 따라 국회는 대통령과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지금껏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이러한 역할을 다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 혹시 청와대와 행정부가 잘못해도 감싸주기에 급급하지 않았는가. 그러고 나서 청와대와 행정부가 잘못해서 자신들의 지지도가 떨어졌다고 비난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여당의 위기는 당정분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청와대와 정부의 시녀 역할을 자청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진영 (경희대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5. 6. 6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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