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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1, 거리로 나와선 안된다 - 박효종
2005-05-09
高1, 거리로 나와선 안된다 내신 성적 반영비율이 커지는 새 대입제도 도입에 반발하는 고교 1학년생들이 7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여 촛불시위를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교생들이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해 대규모 집단행동에 나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지경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나 교육계가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새 대입제도의 정신과 내용에 대해 학생들을 설득하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이 크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면서도 정부가 집권할 때마다 개혁의 이름으로 대입제도를 손댐으로써 ‘오년지소계(五年之小計)’로 접근하는 위선적 경향이 관행화된 것이 원인이다. 정부가 새 대입안을 발표할 때마다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이나 수많은 한국판 ‘맹모’들은 항상 가슴을 졸이며 노심초사해야 한다. 제도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그 이전에 알고 있는 정보도 별로 쓸모가 없고 끊임없이 새 제도에 대해 연구하고 대처방식을 암중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그럴 듯한 이상주의를 내세우며 한건주의식으로 대입제도를 바꾸지만, 바꿀 때마다 관련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실존적 고통과 번민을 강요하는지를 알고 있는가. 대입제도 변화가 한국의 상황에서 ‘개혁적’이 아니라 ‘가학적’이 된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는가. 또 바뀐 제도가 그 이전의 제도보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기대효과만을 강조하는 것도 허풍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고등학생들은 항상 개혁의 실험대상이 되어 왔고 이제 그런 누적된 불만이 표출될 찰나에 있는 것이다. 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 학생은 많고 원하는 대학의 수는 고정된 상태에서 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든 경쟁 자체는 어쩔 수 없다. 따라서 경쟁의 공정성 확보가 중요한 현안인데, 정부는 이 사실을 간과하고 항상 교육의 새판을 짜는 데만 혈안이 되어 왔다. 그러나 정부가 현명하다면 교육문제에 대해 독점권을 갖기보다 대학들과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중앙집중형의 개혁안을 내놓기보다 각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입시안을 마련하면 학생들의 선택권도 넓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교육부는 대학에 실질적인 학생 선발권을 허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신입생을 뽑을 수 있게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번 대입제도를 계기로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시험에 관한 중압감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나오고 우정어린 친구 사이가 살벌한 적대적 관계가 됨으로써 홉스의 자연상태처럼 ‘늑대와 늑대의 싸움’을 방불케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하여 비통한 마음을 갖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또 동정하는 마음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중압감이나 고통에 혹시 거품이 끼여 있는 것은 아닌지 차분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새 대입제도에서 내신의 비중이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내신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자살학생추모제’를 벌이겠다는 시민단체도 그 파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질풍노도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자극해서야 되겠는가. ‘자살학생추모제’를 어떤 의미에서 교육적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교육이란 그리스어의 어원으로 말하면 ‘페다고지’에서 나온 것이다. ‘페다고지’는 ‘파이도스’와 ‘아게인’의 합성어로서 아동을 인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이번의 추모제는 학생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동’하는 결과를 파생시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시험에 찌들고 시험에 주눅이 든 학생들의 영혼의 아픈 상처를 달래고자 하는 진지하고 정성어린 해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고 말만 하는 것으로는 학생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국민윤리교육과 / 시민회의 공동대표) 츨처 - 세계일보 2005. 5. 7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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