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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까지 달러에 매달리나 - 정갑영
	2002-08-05
언제까지 달러에 매달리나 한동안 안정을 유지하던 환율이 심상치 않게 움직이고 있다. 연초에 달러당 1천3백20원 하던 원화가 1천1백80원대로 내려왔으니, 무려 12%나 하락했다. 1억달러를 수출하는 기업은 가만히 앉아서 1백40억원의 매출 손실을 본 셈이다. 영업 이익이 매출액의 5.5%에 불과한 우리 기업에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수출규모가 1천5백4억달러에 달한 것을 생각하면 환율변동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와는 다른 환율 불안 그렇다고 외환당국만을 탓할 수도 없다. 지금은 원화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1천1백5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로 세계 4강이 됐어도, 환율이 불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달러를 사들여도 쉽게 안정되지 않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8백원에도 못미치던 90년대 중반에 비교하면 아직은 걱정이 아니라고 한다.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환차손을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외환당국에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하기도 한다. 모두 환율 위험을 정부개입이나 산업경쟁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런 처방은 원화 가치가 변동할 때마다 등장하는 고정메뉴들 아닌가. 그러나 이제는 환율 위험도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 문제의 진원지가 우리 경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달러화의 불안정으로 세계의 통화질서마저 동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성 상실과 막대한 경상수지의 적자, 증권시장의 불안으로 달러화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아직은 유로화나 일본 엔화가 달러를 대체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글로벌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작은 개방경제는 환율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정부에만 매달리거나 외부요인만 탓하고 있을 것인가. 기업 스스로 글로벌 리스크를 중립화시키는 적극적인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먼저 달러 일변도의 결제수단을 다원화시켜야 한다. 우리 수출의 대미(對美)의존도는 80년대 초 35%에서 최근에는 20%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전체 교역액 중 달러로 결제되는 금액은 오히려 80%에서 85%로 확대됐다. 엔화와 유로화로 결제되는 비중은 각각 8%와 4%에 불과한 실정이다.따라서 달러가치가 흔들릴 때마다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속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기업의 운명을 단일통화에만 맡길 수 있겠는가. 결제통화를 다양화해 글로벌 리스크를 줄여나가야 한다. 해외차입은 물론 매출과 자금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외거래를 다시 평가해 보자. 시장 지배력이 높은 품목은 아예 원화가치에 연동하는 계약도 고려해야 한다. 통화가치는 항상 상대적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결제통화의 다양화는 곧 환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보험의 역할을 한다. 특히 개도국에 해외투자가 많은 기업일수록 현지 통화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양한 결제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결제통화 다양화 노력을 환율변동이 기업 고유의 영업수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환차손은 언제라도 발생하는 일상적인 위험이다.따라서 환차손에 대비한 충당금을 적립하고, 수출액의 일부도 환위험에 대비한 보험으로 지출해야 한다. 환차익은 쉽게 경상이익으로 처분해버리고, 환차손을 감당치 못하는 하루살이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는 장기전략은 원화를 국제화하든가, 아니면 국제통화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유럽이 유로화를 단일통화로 채택하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이것을 국가관이 희박한 종속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향후 10년 내에 세계의 통화는 6개 내외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자국통화를 갖는 이익이 환위험보다 적다면 어찌 대안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기업이 장기목표만을 바라볼 수는 없다. 당장 거래관행을 변화시켜 1~2원의 환율변동만 제대로 방어해도 수억원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지 않는가. 환위험을 최소화하는 글로벌 거래관행을 시급히 정착시켜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중앙일보 2002. 8. 5 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