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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필리핀의 美軍 - 유석춘
	2002-08-05
한국·필리핀의 美軍 한국과 필리핀은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두 나라가 1986년 거의 동시에 민주화를 이룩한 사실일 것이다. 필리핀은 1965년부터 계속된 마르코스 권위주의 정권을 1986년 2월 25일 이른바 ‘피플 파워(People's Power)’를 통해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룩하였다. 한국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던 권위주의 통치를 1986년 6월 29일 당시 집권세력의 대통령 후보가 국민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민주화를 이룩하였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두 나라 모두 미국의 대외정책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미국은 필리핀과 한국이 각각 스페인과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로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필리핀의 경우를 보자. 19세기 말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를 두고 미국은 스페인과 갈등하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던 필리핀 민족주의 세력은 미국과 연대해 투쟁했다. 1898년 마닐라에서 필리핀 독립군의 도움으로 스페인을 굴복시킬 수 있었던 미국은 그러나 파리조약을 통해 필리핀에 대한 종주권을 30년 넘게 유지하다가, 결국 193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필리핀을 독립시켰다. 그러나 1941년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외치며 미국과 전쟁을 시작한 일본에 의해 필리핀은 또다시 독립국가로서의 역할이 부정된다. 그리고 1945년 2차 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나서야 필리핀은 마침내 독립국가가 될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도 필리핀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선 식민지시대 독립운동을 하던 민족주의 세력은 미국을 친근한 우방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한국도 1945년 2차 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곧바로 독립국가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3년간의 미(美)군정을 거친 194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은 독립된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나마 분단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2년 후에 벌어진 전쟁에서 남한은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라를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으로까지 몰리면서 1953년 어렵사리 휴전을 하고 근근히 독립국가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두 나라는 미국과 관련된 문제에서 여러 가지 엇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두 나라 모두 자국의 안보에서 차지하는 미군의 역할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 ‘햇볕정책’이라는 최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존재 없이는 군사적 안보를 전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편 필리핀은 국내의 반군 테러조직을 자체적으로 제압할 능력이 없음을 자인하면서 급기야는 1992년 헌법으로 떠나게 했던 미군을 2002년 초 다시 불러들였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가 이룩한 1986년의 민주화는 양국에서 지금까지 보아 온 미국의 역할을 재평가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자국에서 활동하는 미군의 법적 지위를 필요 이상으로 유리하게 보장해 줄 필요가 있느냐는 반성이 핵심적인 쟁점이다. 특히 미군의 활동과 관련해 불행한 사건과 사고가 연이어 불거지면서 이러한 논의는 급기야 반미(反美)감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이 두 나라 모두 미군을 일방적으로 당장 나가라고 하기엔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반미보다는 실용적인 반미가 더욱 중요해 보인다. 특히 한국은 미국에 엄청난 돈을 주고 무기를 구입하면서 반미를 하고,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군사적 지원을 받으며 반미를 한다면 분명 우리가 손해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닐라에서) 유석춘 (연세대 교수 사회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2. 8. 5 아침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