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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의 도덕지수 - 박효종
	2005-03-28
공직자의 도덕지수 최근 공직사회에 파문을 불러일으킨 두 가지 사건은 공직자의 윤리적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새삼 곱씹어보게 한다.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으면서 공직을 떠났고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 위원장도 역시 비슷한 이유로 사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동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 문제로 낙마한 것은 유감이다. 또 얼마 전 국회의원들의 재산신고가 있었을 때에도 3분의 2 정도가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신고되어 비난 여론이 일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공직자들에게 현미경만 들이대면 여지없이 추풍낙엽이니 그들의 도덕지수를 알 만하다. 이 정도라면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킨다. 부패가 극에 달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해 아브라함은 신과 협상을 벌인다. 신은 처음에 의인 100명을 요구하다가 아브라함의 간곡한 청으로 결국 10명으로 낮춘다. 하지만 10명의 의인조차 찾을 길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비운의 최후를 맞는다. 공직자에 관한 한, 우리가 소돔과 고모라에 비하여 나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공직자라고 하여 비가 새는 집에 양동이를 받쳐놓고 살았던 황희 정승이 되란 말은 아니다. 혹은 머루랑 다래랑 먹으며 청산에 살라는 것도, 나물 먹고 물 마시며 살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사적 생활을 영위하는 개인보다 훨씬 더 엄중한 도덕적 책무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왕도(王道)는 없다”는 말에 친숙하다. 어원적으로 보면 왕이 수학을 배울 때, 다른 평민들보다 더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질문을 받은 수학자는 “수학에 왕도”는 없다고 답변하였다. 그렇다면 같은 맥락에서 윤리에는 ‘왕도’가 있는가. 요즈음처럼 “윤리에 왕도가 없다”는 주장을 실감하는 때도 없다. 실제로 문제의 두 사람도 공직 재임 중에 일어난 스캔들이 아니라 공직을 맡기 이전의 재산 형성 과정에 의혹이 있어 공직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억울한 점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도덕성 결여로 비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적 영역의 엄숙성 때문이다. 우선 공직의 엄숙성은 일반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공직자의 대변 기능에는 이익도 가능하고 가치관도 가능하다. 어떠한 의미든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명실공히 ‘대변자(representative)’로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피대표자들을 대표할 경우는 항상 최고의 존재가 대표하게 마련이다. 꽃은 미의 화신인 장미 이외에 누가 대표할 수 있는가. 과연 호박꽃이 꽃 전체를 대표할 수 있겠는가. 밀림의 대표는 힘없는 영양보다 힘있는 사자가 아니겠는가. 바퀴벌레가 풀벌레를 비롯한 벌레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꼴뚜기가 어물전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사회에서도 최고의 인격자만이 공직을 대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일반 시민들이 존경심을 갖고 공직자들이 내린 공적 결정에 마음 속으로 따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공직자는 일반 사람들을 위하여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한다. 권위 배분의 특징은 일반 사람들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 사람들이 폭력을 행사한다면 법에 저촉되지만,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폭력행사는 공권력으로 규정되어 정당화된다. 이것은 엄청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윤동주가 읊은 것처럼, 공직자들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괴로워해야 하는 것은 공직자가 반드시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큼 윤리규범을 엄격히 지키지 못했을 경우에도 마땅히 괴로워해야 한다. 권한이 크면 책임도 무겁기 때문이다. 물론 공직의 엄숙성이 깨끗한 재산 형성 과정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백한 삶이 공직의 필요 조건이 될 수 있음을 이번 사태는 보여준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국민윤리교육과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5. 3. 2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