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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공조 중요성 재인식할 때 - 남주홍
2005-03-21
한·미 공조 중요성 재인식할 때 근래에 와서 한·미관계가 겉으로는 보다 성숙된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진통같으나 내용적으로는 너무 큰 변화를 보이고 있어서 앞날이 걱정된다. 양국이 각자의 대북정책에 대해 서로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는가 하면 감정적 공식 논평이 나오고 있고, 심지어 미국 조야 일각에서 ‘한국이 과연 미국의 동맹국인가’ 하고 자문하는 사태까지 일고 있다. 북핵과 인권 문제,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문제뿐만 아니라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안보동맹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지난 55년간의 한·미 안보관계가 전반적으로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 느낌이다.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한국은 누가 적인지 분명히해야 한다”고 하자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즉각 “북한은 우리 동족이다”고 반박한 것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자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한반도 방위책임을 점차 한국에 이양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전례없는 이상징후로 볼 수 있다. 즉, 지금 한·미 양국은 북한에뿐만 아니라 상대방에도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에 방한한 것은 한·미 공조 강화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것이지만, 북핵 해법에 관한 미국의 기존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음을 재확인함으로써 앞으로 한·미 공조 체제의 질적 변화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원래 국제정치에 있어서 외교행위란 “자국의 의지를 타국이 따르도록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그래서 동맹관계인 경우 공통 이념으로서 지배이념이 존재하면 그 틀 안에서 상호 권리와 의무가 정해지고 독자 행위를 규제하는 규범 체계가 상호조약 혹은 관습법적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경우는 민족해방과 건국,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의 일방적 지원과 보호를 받은 역사성 때문에 처음부터 비대칭적 특수관계로 출범됐고 이는 적어도 시혜자인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할 수도 있다. 즉, 애초부터 쌍무동맹 유지의 주도권이 한국의 대북정책이 아닌 미국의 대북 위협 평가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작금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 양국 간의 갈등과 마찰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주도적 입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정부의 대미 자주·평등 외교 주장은 바로 이를 뜻한다. 한국은 미국이 9·11 이후에 변해 버린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고, 미국은 한국이 대북 햇볕정책 이후 변해 가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더 보수화돼 가는데 비해 반대로 한국은 햇볕론으로 더 진보화돼 가는 형국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을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한 정부 여당 일각의 태도는 이의 단적인 예이다. 이른바 ‘자유의 확산’을 대외정책 기조로 삼은 2기 부시행정부가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한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이제 북한 인권 문제는 핵 문제와 함께 동전의 앞뒷면 같은 정책이 돼 가고 있다. 즉, 미국은 북한 문제의 해법을 궁극적으로 북한의 체제 변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를 자신에 대한 ‘적대정책’이라고 펄펄 뛰는 북한에 미국 당국자가 아무리 대북 침공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혀도 먹혀들어갈 리가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보도된 탈북 주민의 공개처형 장면에서 보듯이 이제 한국 정부도 최악에 처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침묵을 깨고 당당히 할 말은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민족공조’이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의 인권을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있는 서방 사회로부터 갈수록 고립을 자초할 것이다. 한반도는 지금 한·미동맹의 기본 정신이 흔들리고 있는 데 비해 중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커져 가고 있고, 이 와중에 안보의 중심축이 점차 미·일동맹으로 이동해 가고 있다. 이는 자칫 한반도 휴전 체제의 현상 유지 틀이 바뀔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한·미동맹이 깨지면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너무 많다. 지정학적으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 선택의 폭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이번 라이스 장관의 방한이 이 점을 양측 지도부에 분명히 재인식시킨 계기가 됐으면 한다. 남주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3. 21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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