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가족의 소중함' 보존돼야 - 박효종
	2005-02-04
'가족의 소중함' 보존돼야 헌법재판소 전원 재판부는 3일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번 심리 대상의 핵심은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아버지 집안에 입적한다”는 조항이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호주제에 관한 인식의 공감대를 반영했다고 하기보다는 쟁점 사안에 대해 일정 수준의 전향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가족 해체 등을 우려하는 유림 등의 반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남자만이 호주가 될 수 있는 현행 제도는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제도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혼한 가정의 경우 자녀들은 이전 아버지의 성을 보존하게 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다른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주홍글씨’를 쓴 셔츠를 입고 다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손가정의 부담을 그와는 관계가 없는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호주제가 폐지된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1인1적제’가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호주제 폐지가 필연적으로 가족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유림의 우려가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호주제 폐지가 가족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요소가 될 것임은 확실하다. 물론 가족 해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논쟁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가족 개념 자체가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익숙해 있던 ‘자연적 가족’뿐만 아니라, ‘인위적 가족’ ‘계약적 가족’의 개념까지 등장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동성애자의 결혼을 인정하는 사회를 보면, ‘자연적 가족’ 개념은 해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외부 아이들을 입양한 경우, 그 아들과 딸은 전통적 의미의 아들이나 딸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족은 인간이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연적인 단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의 모든 작동방식도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여기서 대가족이냐 핵가족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핵심집단이 가족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가족의 개념에는 계약, 권리, 이해관계보다 배려, 헌신, 희생의 정신이 두드러진다. 가족관계에서 ‘배분적 정의’나 ‘보상적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또 가족 간의 상호작용에서는 ‘공적의 원리’보다 ‘필요의 원리’가 작동된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준칙도 바로 가족관계의 독특한 속성을 두고 통용되는 표현이다. 물론 가족관계를 말하면서도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헌신이나 희생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녀가 수학능력시험을 칠 때 백일기도를 드리는 어머니나 딸의 대학 합격을 위하여 삼천배를 올리는 어머니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신성성 혹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이지, 부당하고 억울한 희생과 헌신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호주제의 폐지가 전통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왔던 가족의 소중함을 보존하는 데 기여할 것인가, 아니면 약화시킬 것인가. 물론 제도와 의식 간의 관계를 놓고 보면 달걀과 닭의 관계처럼 순환 현상을 그리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즉 제도는 의식에 영향을 주고, 또 의식은 제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호주제 이후의 새로운 제도가 가족의 소중함을 보존하는 ‘선순환’을 그릴 것인지, 아니면 가족의 결속력을 깨뜨리는 ‘악순환’을 그릴 것인지 관심의 초점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여성의 잊혀진 권리 혹은 평등권을 복원한다는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보존하는 문제에는 불확실성이 많다. 호주제 위헌 결정은 앞으로 예상되는 심도 있는 논의의 물꼬를 튼 것이지, 완성된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국민윤리교육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5. 2. 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