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북한의 'NLL' 이중잣대 - 제성호
	2005-01-24
북한의 'NLL' 이중잣대 최근 북한의 행보를 보면, 갈지(之)자걸음을 하듯 유화와 강경이 교차하는 이중성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한반도 동서 해상에서 보여준, 엇박자의 말과 행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모두 다 계산된 것으로 생각되기에 장밋빛 해석보다는 냉정한 평가가 요구된다. 20일 북한은 그들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서 기상악화로 침몰한 한국 화물선의 구조를 위해 우리 해경 함정의 북측 해역 진입을 허용했다. 이는 분단 후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북측은 우리 함정의 동해 북방한계선(NLL) 통과에 동의했다. 이런 북한의 조치는 남북이 정치적 신뢰를 쌓아 가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다분히 국제적 이목을 고려한 발빠른 대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만일 이번에 북한이 EEZ 진입을 불허했다면,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비인도적 처사라는 국내외의 비난을 초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침몰·조난된 선박의 수색 및 해난 구조를 위한 국제법규를 발전시켜 왔다. 1979년 4월 서명된 ‘해상수색 및 구조에 관한 국제협약’(일명 SAR협약)은 해상조난자에 대해 긴급조치를 취하는 한편, 최대한의 적절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법규는 인도주의 구현과 해상 교통의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오늘날 국제관습법화돼 있다. 물론 비당사국인 북한도 준수해야 한다. 북한은 21일 “남한 함정이 서해 황해남도 강령군 구월봉 남쪽 해상의 북한측 수역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영토관할권을 확장하기 위한 것으로 서해 NLL의 합법성을 부정하는 전제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결코 국제법적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이래 지금까지 38도선 이남의 해역은 대한민국이 관할해 왔다. 6·25전란의 결과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협정에 의해 남북 경계선인 38도선이 육상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 대체됐지만, 해상에서는 그러한 대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정전 당시의 해상 제해권을 반영한 것이었다. NLL은 ‘본래부터’ 우리측 해역이었던 서해5도 주변수역을 효과적으로 관할하기 위해 유엔군사령관이 한국을 대신해 설정한 것이었다. 이는 지극히 합법적인 조치로서 오늘날 정전협정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NLL의 유효성을 긍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1999년 9월 아무런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해상분계선’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 또한, 지난해 12월말의 경우처럼 NLL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며 위협사격을 경고하는 등의 신경전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북한이 서해 NLL의 합법성을 부정하는 말을 한 시점이 미묘하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 유엔군사령관(미군 4성 장군)이 설정한 NLL에 대해 시비를 걺으로써 장차 미국의 한반도 문제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에 대해서는 NLL 흔들기를 통해 우리측의 반응을 떠보는 한편, 앞으로 북핵 문제, 평화체제 전환 문제 등에 있어 북한의 민족공조 노선을 따를 준비가 돼 있는지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2기 부시행정부는 자유의 확산을 외교정책의 기치로 내거는 한편,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고 있다. 향후 인권, 핵 비확산, 반테러 등 국제규범과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북한은 앞으로 대외 및 대남 관계에서 서해가 아닌 동해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국제규범에 합치하는 행동을 더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한 현명한 선택만이 북한 체제의 생존과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 교수, 대한국제법학회부회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1. 2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