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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만 득세한 2004정치 - 박효종
	2004-12-30
'강경'만 득세한 2004정치 금년 한 해의 정치를 되돌아보면 어떤 표현이 어울릴까? 굳이 한문의 4자성어는 아니더라도 ‘강한 정치’가 아닐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가 정책을 세우고 밀어붙이는 모습이나 여야 의원들이 씨름판도 아닌 국회에서 몸싸움으로 난장판을 벌이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성난 사자의 모습이다. 정치가 이처럼 강하다 보니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교육이나 문화도 압도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상황에서는 “강한 자여, 그대 이름은 정치”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왜 정치가 강할까? 원래부터 끈질긴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가서일까? 아니면, 천성이 부드러운 사람들도 일단 정치판에 들어가면 그 영향을 받아 강하고 뻣뻣해지는 것일까? 그 인과관계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순환현상이라고 봐야 할는지 모른다. 강한 정치가 정치인에게 영향을 주고, 또 강해진 정치인들이 정치를 더욱 더 강하게 압박하고…. ‘강한 정치’는 순환현상이기는 하나, ‘선순환’은 아니고 ‘악순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한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닐 터이다. 감기도 몸이 약하기 때문에 걸리는 병이고, 약체 축구팀은 냉소의 대상일 뿐 환호의 대상은 아니다. 한국의 목표도 ‘작지만 강한 국가’, 즉 ‘강소국(强小國)’이 아닌가? 올림픽의 구호 가운데 하나도 “더욱 강하게”이다. 그런데 유독 정치가 강한 것은 마음에 걸린다. 왜 그럴까? 정치가 강한 것은 몸이 약한 사람이 강해지는 현상보다는, 생명이 없는 무생물의 강함이나 뻣뻣함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특히, 생명이 끊어져 시체가 되면 굳고 딱딱해지는 현상과 유사하다. 반대로 생명이 있는 것은 부드럽고 약하며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유연성이 현저하다. 한국 정치가 강하다는 것은 경직되고 팩팩하다는 의미이며, 생명력과 유연성을 잃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강하고 팩팩해졌으니, 아무리 여야가 작심해서 4인 대표회담을 한들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힘들다.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 4대 쟁점법안에 대한 합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회를 보면 날치기, 직권상정, 몸싸움, 고성이 단골 메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농성과 시위가 최근 부쩍 늘었다는 사실이다. 국회가 ‘토론장’이 되고 ‘공론장’이 되어도 시원치 않은데, 하물며 ‘농성장’이 되다니, 이처럼 자기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모순투성이의 국회가 또 있을까? 이제 목소리가 작고 합리적인 어투로 말하며 예의를 지키는 국회의원은 방출되고 목소리 크고 맷집 좋은 국회의원들만 적자생존해야 할 판이다. 이렇게 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 될 터이다. 결국 이번 정기국회도 뻣뻣하고 팩팩한 모습으로 끝나가는 것인가? 협상도 할 줄 모르고 타협도 할 줄 모르는 국회는 강한 정치의 귀결이 될 것인가? 17대 국회가 물갈이가 된 것은 확실한데, 역시 단단하고 뻣뻣한 정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뻣뻣해진 시체는 땅에 묻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타협도 양보도 할 줄 모르는 국회는 고려장의 대상이다. 얼마 전 언론에 발표된 성 역할 변화를 보면, 약한 존재로 간주되던 여자는 강한 존재가 되고, 강한 존재로 여겨지던 남자는 예뻐지고 부드러워졌단다. 시대의 흐름이 이렇다면, 한국 정치도 어깨에 힘을 빼고 좀더 부드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정치가 ‘예뻐지면’ 더욱 좋겠지만, 예뻐지기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부드러워’질 수는 있을 것이다. 정치가 좀더 부드러워지고 경제는 좀 더 강해져야 한다. 굳고 강한 정치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많은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16대의 탄핵국회나 17대의 농성·시위국회가 보여주고 있는, 이 강한 정치의 볼썽사나운 전통은 내년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 반드시 올해 안에 종식돼야 한다. 과연 그런 정치 기적이 일어날 것인가?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츨처 - 문화일보 2004. 12. 3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