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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우 의원이 고백할 때 - 홍진표
	2004-12-13
이철우 의원이 고백할 때 이철우 의원의 과거 경력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우선 그 문제제기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노동당원으로 입당해 지금까지 암약"이 문제를 공론화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첫 주장이었다. 일단 사실 관계에 있어서는 한나라당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사실을 처음 폭로한 한나라당 의원은 '간첩'이나 '암약'이란 표현을 쓴 것은 과장이 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 의원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진실 공방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의원이 주사파 지하조직에 가입해 활동했고, 그 상부는 월북해 북한노동당에 가입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동안 여당의 386 의원들은 그들이 과거에 좌파사상에 입각해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지적에 대해 색깔론이라고 일축해 왔다. 심지어 전대협 간부 출신 여당의 모 의원은 "주사파라는 말은 당국과 언론이 만들어 낸 것일 뿐 실체가 없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이제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 의원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다. 이 의원이 노동당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추종했으며 북한 주도의 이른바 남한 해방을 위한 활동을 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과거만을 따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다. 전근대사회는 기본적으로 신분사회인만큼 개인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신분.가문.지역 등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무관한 생래적인 요소를 결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는 개인이 후천적 노력에 따라 평가받고 정당하게 보상받는 시스템이 인류사회에 처음으로 등장한 획기적인 진보다. 민주주의의 이런 원리에 따르면 개인의 과거 과오가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항상 개선 가능성을 열어두고 현재의 무엇으로 평가돼야 한다. 이 의원은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 주체사상 책도 읽었고 이를 적용해 사회를 바꿔보려고 노력한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감옥에서 4년을 보내면서 주체사상 논거는 다 버렸다"고 밝혔다. 한국의 386 세대들은 지난 소련.동구권 붕괴를 계기로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마르크스주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겪는 당연한 진통이었으나 극소수의 공개적 자기비판이 있었을 뿐 대부분 치열한 자기검토 없이 적당히 넘어가고 말았다. 사회적 압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386들은 법적 제약과 국민의 반공정서를 피해 밀실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민주화만을 외쳤다. 더구나 6월항쟁을 통해 군사정권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이른바 '좌경용공'은 정권의 악의적 조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운동권을 떠나는 자는 속출했으나 진정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따져보는 풍조 또한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마르크스주의는 무오류지만 그 현실 적용이 잘못된 것이라는 변명이 난무했고 심지어 중국의 문화혁명을 찬양한 것으로 유명한 리영희 교수는 사회주의라는 진리를 수용하지 못한 인간의 천박한 이기심(?)에 공격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필자는 과거에 북한과 직접 연계된 민족민주혁명당이라는 지하조직의 당원으로 활동했던 주사파였으며, 1996년께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깨닫고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게 됐다. 서구의 지성사를 보면 하이에크, 칼 포퍼와 같은 자유주의 사상의 대가들도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었고, 대문호 앙드레 지드 또한 사회주의에 빠졌다가 소련을 방문한 뒤 사상의 전환을 이룬다. 이러한 사상의 편력이 이색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적 풍토는 지극히 반지성적이며 명분론적이다. 이 의원이 단지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된 이상 변화한 자신의 생각을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용기를 기대해 본다. 홍진표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 출처 - 중앙일보 2004. 12. 1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