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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車 신화’와 정부의 역할 - 류동길
	2004-12-07
‘현대車 신화’와 정부의 역할 국화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운다고 했다. 고통과 인내와 기다림의 결과로 한 송이 꽃은 피어난다는 걸 노래한 것이리라. 기업의 성과도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참고 기다린 결과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1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 200만대를 돌파했다. 내수판매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해외 생산분을 포함한 수출이 30%나 급증한 155만여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230만대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달려가야 할 길이 아득히 멀고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세계 자동차 생산량은 6000만대(2002년), 생산능력은 7000만대, 판매량은 5600만대에 이른다. 자동차 판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좋은 차를 만들면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점을 동시에 말해주는 통계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기업들은 인수·합병(M&A)이나 자본 제휴, 기술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이권 빼앗기 게임에 열을 올린다. 경쟁력을 잃는 자동차는 언제든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의 간판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건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재계는 외국 자본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경우 막을 방도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이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인수·합병 위협을 받는 기업은 투자에 나서기보다 경영권 방어에 온갖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연금을 동원하는 등 경영권 방어에 문제없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안심하고 있을 경영인은 없다. 현대자동차(56.5%) 삼성전자(54.4%) 포스코(70.2%) 국민은행(77.3%) 등 국내 주요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50%를 넘었다. 상장기업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는 기업은 5% 가량인 32개, 40%를 넘는 기업은 28개에 이른다. 외국인이 경영권을 가져 갈 가능성은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재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출자총액을 규제하고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제한하겠다며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려 한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선단식(船團式) 경영의 폐해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기업의 과거 행태만으로 판단하거나, 경영권이 누구 손에 있든 문제가 아니라면 그럴 필요성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건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잘못된 정책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이장규 기자(중앙일보 11월 30일자 칼럼)에 따르면 정부는 1980년 자동차산업은 희망이 없다면서 현대·대우·기아를 하나로 합쳐 GM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외국인한테 경영권을 넘겨주면 자동차 수출은 끝”이라며 버텼고, 정부의 말만 믿고 기다리던 GM은 화를 내고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동차산업(2002년)은 직접고용인원 21만명, 소재·정비·판매·보험 등 전체 150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대표적 기간산업이다. 2003년 자동차 부품을 포함한 수출은 233억달러, 올해는 3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일 그 때 정부 뜻대로 했다면 오늘의 자동차산업은 없을 게 아닌가? 정부가 할 일, 기업이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다. 정부는 당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달리는 한국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이제는 ‘파업의 대표주자’라는 오명을 씻어내야 할 책무도 있다. 더욱 빨리 달려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牽引車) 역할에 앞장서야 한다. 현대자동차에 많은 기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2. 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