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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잔치뒤의 그늘 - 조희문
	2004-12-06
한국영화,잔치뒤의 그늘 노무현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하면서 왕실에 한국영화 4편을 선물했다. 한국영화도 이제 어디 내놔도 빠질 게 없다는 자부심의 표현처럼 보인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1000만 관객 돌파, ‘올드 보이’와 ‘빈집’의 칸, 베니스 국제영화제 수상. 올해 한국영화계가 거둔 파격적인 성과다. 각각의 경우만을 평가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화려하다. 인구가 5000만명이 채 안 되는 나라에서 한 영화를 1000만명이나 보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국민적인 ‘영화보기운동’을 벌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한 편이 아니라 바로 뒤따라 개봉한 영화가 한 달여 만에 최고 흥행 기록을 바꾸어 버렸다. 칸, 베니스,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권위와 명예를 인정받는 행사다. 그런 영화제에서 ‘올드 보이’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빈집’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을 받았다. 유수한 영화제에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듯 큰 상을 연거푸 받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지만 한국영화는 마음에 드는 물건 골라 집듯 영화제를 옮겨 다니며 상을 받고 있다. 최고 흥행 기록과 국제영화제에서의 성과.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결과를 한 해 동안에 만들어낸 한국영화의 집중력과 에너지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정도면 대통령이 자랑해도 괜찮다고 본 것일까? 그러나 열광과 환호로 끓어 넘칠 것 같은 영화계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이렇다 할 영화를 찾기 어렵다. 규모나 수준, 흥행 결과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의 국내 흥행 기록은 광고비도 되찾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수준으로 그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외에서 제대로 팔 수 있거나 흥행에 성공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상을 받는 경우가 늘어날수록 감동이나 흥분의 강도는 낮아지고, 그것이 흥행과는 별로 상관이 없으며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영화 흥행을 이끌었던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유행은 제작비의 급속한 상승을 불러 왔다.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갖춘 복합 극장은 관람객들에게 고급스러운 영화 관람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 기여했지만 필연적으로 흥행성이 높은 영화를 요구하고 있다. 적으면 40~50개, 많으면 300~400개 스크린에서 동시에 개봉하고, 개봉 첫 주말에 흥행 승패 여부를 가늠하는 현상이 일반화하면서, 영화사들은 사생 결단하듯 유명 배우를 기용하고, 감각적인 홍보, 광고에 제작비만큼의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 50억~100억원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제작비 규모는 급상승했다. 문제는 실제 제작비 쪽으로 쓰이기보다 대부분이 배우들의 출연료나 광고, 홍보 비용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투기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배우들의 스케줄이 영화 제작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정한 배우를 보고 제작을 준비했다가 안 된다는 한 마디에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수록 스타급 배우에 매달리고, 마케팅에 사활을 건다.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소금물인 줄 알면서도 당장 목마르다고 계속 마시는 격이다. 어떤 일이든 이루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다. 건강은 병이 들기 전에 지켜야 하고, 잔치가 흥겨울수록 끝난 뒤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영화가 거품같은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투기적인 단기 승부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2. 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