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 바른사회 칼럼
수능, 자격시험화 하자 - 권대봉
2004-12-02
수능, 자격시험화 하자 경제범죄가 발생한다고 해서 경제부총리가 대 국민 사과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수능부정사건이 일어나자 교육부총리가 즉각 사과를 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정부가 대학을 대신하여 사실상의 선발고사기능을 가진 수능을 주관하는 짐을 짊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수능부정의 원인은 도덕성의 마비와 디지털기술의 결합에 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부정입학으로 얼룩졌던 과거사 때문에 한국 대학들이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됐다. 정부 관계자는 물론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대학이 공정한 잣대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리라고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대학을 대신하여 사실상의 선발고사인 수능시험을 전체 수험생을 대상으로 주관하다 보니 관리상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대학에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대학을 과보호하는 정부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언제까지나 대학을 과보호하며 정부가 대학을 대신해서 수능으로 인해 홍역을 계속 치러야 하는가? 작년에는 복수정답 인정과 출제위원 자격이 사회 문제가 됐고, 올해에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사건이 발생하여 수능이 위기를 맞고 있는 만큼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수능 전에 교육부총리가 시·도교육청에 수능 부정을 예방하라는 지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교육청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 그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수능이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부정사건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학의 학생선발권은 최대한 존중되고 자율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 행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정부는, 대학이 자율은 누리되 그에 따르는 무한책임을 질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먼저 마련하고, 수능을 대입 지원의 최저 요건으로 활용하는 자격고사로 전환하여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지금보다 더 확대할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입 정원이 고교졸업생 총수를 초과하는 시점에서 수능의 자격고사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왜냐하면 모든 유형의 대학이 일률적으로 수능 자격을 요구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대학·산업대학 등에 수능 자격 없이도 대학 특성에 알맞은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일반 대학만 수능 자격을 요구하도록 하면 수능자격고사화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절대평가를 통해 수험생들이 대학 수학능력이 정말 있는지 여부를 판정해주는 것이 수능자격고사의 원칙이 되면, 수능자격고사는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의 질 관리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험생 본인의 직업 진로 선택에도 매우 중요한 잣대로 활용될 수 있다. 수능을 자격고사화하여 대입 지원의 최저 요건으로 하면, 대입에서 수능 비중이 줄어들어 수험생들을 부정행위 유혹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인적자원 개발 차원에서 이점도 있다. 즉, 전문대학과 산업대학들이 수능 없이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면, 고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은 물론, 직장 생활을 하다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평생학습 체제가 완비돼 국가 인적자원 개발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의 수능제도는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정말 대학 수학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성과 관계없이 수능 점수에 의해 전공을 선택하도록 부추겨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뒤에 방황하게 만드는 폐단이 있다. 정부가 대학의 책무성을 완벽하게 감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구비한 연후에, 수능을 자격시험화하고 대학의 선발권을 확대해 주면 수험생들은 본인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전공을 선택하게 되므로, 대학이 지식기반 시대에 필요한 국가 인적자원을 제대로 양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2. 2 포럼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