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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北정상회담 서둘 일 아니다 - 제성호
	2004-11-29
南北정상회담 서둘 일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2005년엔 남북 정상회담이 반드시 열려야 한다”며 “당과 청와대에 교감이 이뤄진 상태”라고 말한 데 이어 통일부 장관이 주적론 폐기로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통일부 차관도 내년 3월을 목표시점으로 한 대북 프로젝트의 준비를 시사하기도 했다. 최근 여당의 북한통이 중국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했음이 확인됐고, 남북 회담의 베테랑인 김보현 국정원 3차장이 19일 금강산 골프장 착공식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이 이미 상당한 정도 진척됐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25일 금강산에서 적십자 실무접촉이 재개되는 등 북측이 화답하는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정상회담이 민족 화해와 남북 협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정치적 국면 전환 등 정략적 의도를 갖고 추진할 경우 남북관계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은 서두르지 말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의 최대 현안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 생존권을 위협하는 북핵 문제다. 북한은 핵 문제를 고리로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안전보장과 군사적 불가침, 경제제재 해제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기에 한미 양국은 6자회담의 구도 아래 다자적인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긴밀한 국제공조를 바탕으로 보다 창의적인 협상안을 강구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옳다. 반면에 남북 정상회담은 대북 협상 역량을 분산시킬 소지가 있다. 북한이 우리 최고지도자에게 북핵과 관련해 국제공조를 포기하고 민족공조를 하라고 요구해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일 등 주변국의 동의와 협조 없이 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모종의 대북 뒷거래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우리의 통일외교 환경을 극도로 악화시킬 수 있다. 국내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정상회담을 국정과제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여건이 무르익어야 한다. 타이밍이 맞아야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 2000년의 경우처럼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에 임하는 조건으로 대가를 지불해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회담을 통해 남과 북이 타협하고 서로 만족을 얻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북한은 해방 60돌이 되는 2005년을 통일원년으로 삼기 위해 ‘낮은 단계 연방제’ 협상을 요구해 올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있다. 만반의 대비 없이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여당은 남북 정상 간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고, 무리하게 이를 추진해선 안 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그간 정부가 여러 차례 공언했던 것처럼 북핵 문제가 해결된 다음, 또 국내 문제를 상당 부분 마무리한 후 추진해도 늦지 않다. 현 단계에서는 정상회담에 매달리기보다는 이른 시일 안에 장관급 회담을 재개함으로써 다방면의 교류·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2차 국방장관 회담 등을 통해 군사적 신뢰 구축과 긴장완화 조치를 협의·실천해 나가는 것이 더욱 현명한 대북 정책이라고 하겠다.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개선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정상회담은 필요하고도 가능한 때 국민적 지지를 얻어 공개적으로 추진하되, 한반도 평화 증진과 분단 고통 완화(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 등)를 이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명성 확보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11. 2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