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국회 개회 전 상임위별 국정감사, 법 정비 해놓고도 시행 첫 해부터 안 지켜
헌법 제61조에 근거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제2조 1항은 국정감사 기간에 대하여, "국회는 국정전반에 관하여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매년 정기회 집회일 이전에 감사 시작일부터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감사를 실시한다. 다만, 본회의 의결로 정기회 기간 중에 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현행 국감제도에 대한 비판과 상시국감 요구에 대한 결과로 지난 해 개정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시행 첫해인 올해 국정감사 역시 결국 여야의 정쟁과 장외투쟁 끝에 또다시 정기국회 기간 중 집중감사 형태로 열리게 됐다. 내년부터는 반드시 상임위별로 시기를 정해 30일이라는 기간을 두고 감사를 진행하도록 한 법 규정을 따라야 할 것이다.

◈ 문제의 핵심은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혼동하는데 있다
[바른사회]는 국감이 한창이던 지난 10월22일 "대한민국을 마비시키는 국정감사, 이대로 둘 것인가" 란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토론을 통해 모아진 결론은, 지금 우리 국회가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가 엄연히 국정조사에서 다뤄야 할 사안들을 행정부 예산사용에 대한 감사가 목적인 국감장으로 끌어오고 있다. 십여 년째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보니, 행정부도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며 국민과 언론 또한 국감이란 게 원래 이런 건가 오해하고 있다. 국정감사가 국정조사의 연장처럼 돼버리면 결국 국감제도의 취지와 목적을 저버리는 셈이다.

◈ 세계에 유례없는 국정감사제도와 국정조사제도의 불편한 동거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2조와 3조에는 감사와 조사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제2조에는 국정전반에 관하여 소속 상임위원회별로 실시하는 '국정감사'를, 제3조에서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의 요구가 있는 때에 특별위원회 또는 상임위원회로 하여금 국정의 특정사항에 관하여 조사하는 이른바 ‘국정조사’를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제도가 공존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굴절된 헌정사에 그 원인이 있다. 제헌헌법 제43조에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게 하며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국정감사제도만을 두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정감사제도가 7차 개헌(1972.12.27)에서 삭제되었다가, 8차 개헌 헌법(1980.10.27) 제97조에 "국회는 특정한 국정사안에 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그에 직접 관련된 서류의 제출,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국정감사가 이른바 국정조사로 그 내용이 변질된다. 9차 개헌(1987.10.29) 헌법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정감사권을 부활시키면서 기왕에 있던 국정조사권은 그대로 둠으로써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모두 인정하는 기형적 형태를 초래하게 됐다.
국정감사는 감사대로, 국정조사는 조사대로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기형적인 법 구조를 정리해야 할 일이다.

◈ 기업의 잘못은 기업을 감시-감독하는 행정기구가 충실히 했는지를 따져야
어떤 기업에 대리점 납품가격 압력이 있었는지 부당계약 판매 했는지 의심스럽다면, 이것은 행정부를 통해서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국감장은 기업인을 불러 따지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31일 정무위원회 국감에는 모 유통업체 사장이 자사 매장에서 판매된 파스타소스 제품의 하자로 인한 후속조치 문제로 질타를 받았다. 그것은 소비자원 등의 감시업무를 통해 따져야지 과연 국감장에 경영자를 불러 국회의원이 혼을 내야 할 성질이 아니다.

◈ 증인채택 문제를 둘러싼 혼란, 줄일 수 있고 줄여야 한다
"꼭 그 사람이 오지 않으면 감사를 못하나요?"
누구를 증인으로 채택하느냐가 심각한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 때문에 국감을 보이콧해버리는 것이다. 기획재정위원회는 증인문제로 신경전 끝에 여당 간사의 사임 소문까지 나돌았다. 현장모니터링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장-차관을 비롯해 많은 피감기관장과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언론과 시민단체 모니터단도 지켜봤다. 그런데 다른 증인 몇 사람 출석여부로 다투다 예정된 회의를 파행시킴으로써 이들은 멍하니 앉아 바쁜 일정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대학생인 우리도 일분일초가 아깝고 분통이 터지는데 누구 한 사람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 "왜 국감을 낮에 안하고 밤에만 하나요?"
바른사회의정모니터단 학생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낮에는 내내 회의실을 비워놓다가 늦게 모여 심야까지 회의하는 것. 이 때문에 학생들이 현장방청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국회에서 한나절을 보내고도 정작 회의가 끝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방에서 온 학생도 많고 택시 등 심야교통편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행의 첫째 원인은 증인채택 때문이었다. 감사 당일 갑자기 ‘이 사람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하면 그 문제로 또 한나절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물론 합법적인 의정활동의 일환이지만 그것이 너무나 심각한 비효율을 동반한다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행정부의 일 년 농사를 감사하는 일보다 시시각각 터지는 현안대응과 이를 위한 증인채택을 더 중시하는 행태는 국정감사의 본질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 시정조치 확인 안하고 작년에 했던 얘기 또 하는 재탕 질의, 국회-피감기관 모두 한심
국회의원은 했던 질의 또 하고 기관장은 했던 답변 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 됐다. 모든 의원이 같은 내용을 질의하는 문제는 그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작년에 했고, 재작년에도 했던 지적에 비하면 말이다. 피감기관은 국감 하루만 대충 때우고 말았고, 국회의원은 지적해놓고 확인도 안 했다. 제도는 그렇게 하라고 강제하지도 않는다. 누구의 잘못일까.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제16조 3항에 따르면, "정부는 시정 요구 받은 사항을 지체 없이 처리해야 한다"고 돼있을 뿐 처리 시한은 물론 사후 감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현재 실무상으로 국정감사 결과 위법 또는 부당한 사항이 있을 경우 시정 요구사항, 처리 요구사항, 건의 사항 등으로 구분하여 정부에 이송하고 있으나 분류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실효성도 없다. 처리 결과가 미흡한 경우에도 제재 수단이 마련돼 있지 않다.
당연한 임무를 스스로 다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 피감기관이 특별한 사유 없이 국회의 정당한 시정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제제 방안을 규정해야 한다. 더불어, 국정감사 전에 지난해 국감에서 지적 받은 사안에 대해 각 부처가 어떻게 개선했는지 보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피감기관의 국감 시정 요구에 대한 조치 사항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한 전문위원 검토 보고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또한 위원회는 필요한 경우, 그 의결로 국회 예산정책처 또는 국회입법조사처에 국정감사 시정요구 조치 사항에 대한 검토 또는 조사를 요구하는 제도 등을 통해 국정감사가 매년 반복되는 20일간의 "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사상 최다 피감기관 채택해놓고, 현장시찰 한다고 수일 까먹어
이번 국감의 피감기관은 총 628개로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하루에 한 상임위에서 3-4개의 기관을 감사해야 하는 숫자다. 하루에 피감기관 3곳, 상임위원을 25명으로만 봤을 때, 한 기관에 한 의원이 10분씩만 질의를 한다고 하면, 식사시간을 빼고도 12시간 30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촉박한 일정 중에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 이상 걸리는 현장시찰을 몇 차례나 끼워 넣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나마도 대부분 시의성이나 현장성과 상관없는 내용으로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꼭 필요한 시찰이라면 국감기간 전에 다녀와 국감 내용에 반영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