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끝없는 미로
	2003-12-22
정치자금 끝없는 미로 끝이 없는 미로를 가고 있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도 성역 없는 수사에 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 끝없는 미로에서 대통령의 하야까지도 가능한 것인지 지금 아무도 모른다 측근의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재신임을 묻겠다던 노 대통령의 성명에서 시작해 이회창 대통령 후보 측근의 선거자금 동원사건으로 급회전했다가, 다시 노 대통령 측근의 선거자금 동원사건으로 급회전했다가, 그의 성역 없는 수사에 응하겠다는 선언으로 급회전하는 한국 정치는 아슬아슬한 비탈길에서 급제동을 계속하다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선거자금이 이회창씨의 10분의 1 정도가 넘으면 하야할 뜻을 보이면서 또 한번 급경사의 산길을 달리다 낭떠러지에 걸린 것이 이 나라 정치의 모습이다. 10분의 1 정도라면 그는 무죄인가. 그 말 속에 노 대통령의 천진한 모습과 함께 법의 무지가 들어 있다. 10분이 1 규모가 도대체 얼마만한 불법자금이란 말인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대통령 스스로도 암흑의 세계를 다 알고 있을 것 같지 않다. 그의 측근들이 얼마를 누구로부터 걷었는지, 얼마나 선거자금으로 쓰이고 얼마가 ‘배달사고’로 잃어버린 돈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유용이라고 표현한다. 이회창씨는 스스로 감옥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또한 측근들이 얼마를 누구로부터 모았는지, 얼마가 그의 선거자금으로 들어갔고 배달사고를 당했는지 모를 것 같다. 검찰총장도, 법무장관도 이 암흑세계를 다 파헤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사과상자와 골프백으로 나른 돈이 얼마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암흑세계는 야쿠자 세계의 암흑과도 같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정치자금의 전모를 노 대통령이 밝힐 수 있다면 그는 기적을 행한 성현이나 살신성인한 인물로 존경받을 만하다. 정말 큰 개혁에 성공한, 정치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될 것이다. 한국정치의 후진성, 부패는 바로 정치자금의 암흑에서 비롯되었다. 지나간 대통령들 모두 불법 선거자금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치부를 했다. 그래서 기업이 정경유착을 했고, 또 망했다. 한국사회의 부패가 바로 정치자금의 암흑 속에서 가능했다. 평범한 이 나라 시민들이 30년 일해서 얻는 평균 연금이 얼마인데, 대통령 후보들은 몇백억원을 하룻밤에 모을 수 있었다는 말인가. 이 때문에 경제가 파탄을 면치 못하고 있지 않는가. 암흑을 깨뜨려야 한다. 박두진의 시편 속에 ‘해’가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라도 좋아라.” 노 대통령이 어둠을 밀어내고, 고운 해를 가져오기 바란다. 그러면 그는 홀로라도 좋을 것이다. 이 나라는 청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업은 정치자금을 거부하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면, 암흑세계는 걷히고 새 세상이 올 것이다.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청산 위에 고운 해를 떠올릴 수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의 고통으로 끝을 내자. 최연홍 (서울시립대 정치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12. 22 시론